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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두류실/두류실 일기

여벌은 필수다

 

 

◈여벌은 필수다


나는 산에 다닌 지가 비교적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배낭을 꾸리는데 거의 한 시간

이상을 소요한다.

 

그리고 여전히 산행장비 점검표라고 나름대로 만든 체크리스트를 보며 장비 하나

하나를 대조하며 배낭을 꾸리는데, 특히 요즈음 같은 가을철 산행을 앞두고 배낭을

꾸릴 때면 더욱 신중해진다. 여름산행 때와는 달리 이제 보온에 신경을 써야 하며,

특히 야영을 할 경우에는 거의 겨울산행에 준하는 장비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그 점검표에는 '여벌'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장비가 몇 가지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산악회나 산행팀의 장비계획에도 들어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산행

준비물에는 여벌 옷, 여벌 건전지, 여벌이라는 접두어를 달고 있는 것들이

많음을 볼 수 있다. 왜 별로 사용할 일도 없을 것 같은 것들을 빠트리지 말고

준비해오라 하는 것일까?

 

여벌은 스페어(spare)라는 어감에서 느끼는 것과는 달리 필수로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여벌로 가져 다니는 건전지, , 양말, 장갑 등이야말로 예상할 수 없는

가을산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장비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계절을 막론하고 다 그러하겠지만)

 

지난 주말 지리산 천왕봉에서 하산 길에 만난 비는 가을비로서는 거의 퍼붓듯 내렸

다고 할 수 있다. 이날은 다행히 날씨도 비교적 포근하였고 바람도 별로 없었지만,

만약 기온이 내려가거나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가 내려갈 경우에는, (혹은 땀)

흠뻑 젖은 몸으로 저체온증 (하이포서미아)이라는 괴물이 소리 없이 다가오게

된다. 이때는 지체 없이 몸을 닦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어야만 하는데, 갈아입을

여벌 속옷, 보온복, 양말 등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산에서 발생하는 사고유형을 보면 凍死(동사)를 하는 만큼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며,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고는 계절적으로 봄. 가을에 많이 발생

한다고 한다. 십 수년 전, 장터목대피소에서 하산하던 꽃다운 부산의 젊은 여성

몇 분이 당한 사고는 가을철 저체온증 사고의 전형이라 할 수 있겠다.

 

 멋진 단풍, 눈 시린 하늘, 맑은 대기로 우리를 맞이하는 낭만의 가을 산자락에도

이렇게 크나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언제나 산에 들고 싶어하게 하는 좋은 느낌의 산행을 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장비의 준비가 무엇보다 필요하겠으며, 특히 여벌 장비 챙기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그래서 나는 늘 이렇게 이야기한다.

  

여벌은 필수다.

 

 

두류/용섭

[07/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