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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길/산행.여행기 모음

미산계곡,살둔산장, 월정사 가는 길④

등록일 : 2007-08-20 14:44:20


[월정사 전나무 숲길]



◈미산계곡
, 살둔, 월정사 가는

 

7.25() , 흐림

 

설악산 인근의 숙소에 머문 3일째,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다. 오늘 부산으로 가는 길에는 인근의 고성 화암사, 내린천의 상류인 미산계곡, 홍천군 내면의 살둔산장, 그리고 평창군 진부면의 오대산 월정사를 들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여전히 잿빛 빗장을 풀지 않는 울산바위 암릉은 비구름에 싸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미시령으로 향하는 한적한 도로를 거침없이 달리다 보니, 작년 5월에 개통되었다는 ‘미시령터널’ 매표소가 나온다. 아뿔사… 미시령 옛길을 이렇게 지나쳐버리니 화암사 답사는 어쩔 없이 생략되어 버리고 만다. 터널이 가까워지자, 왼쪽에 드리워진 능선의 미색 암봉들은 바로 곁에서 짙은 운무와 어우러지며 수묵화 속의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기존 22.7Km 꾸불꾸불한 미시령 도로 대신, 7Km(터널 길이 3.6Km 포함)밖에 되지 않는 길은 우리는 순식간에 인제군으로 접어들게 된다.

 

용대리 인근 ‘만해축제’를 알리는 만장이 드문드문 보이는 것을 보니, 행사 개최가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설악산의 들머리라고 있는 원통 3거리에서 인제-홍천으로 이어지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44 국도를 곧장 달렸다. 그러고는 국도변의 삼팔선휴게소를 지나, 산간지역을 가로지르는 446 지방도를 탔다. 아름다운 미산계곡을 품고 있는 인제군 상남면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길을 지나면서야 인제란 곳이 ‘군사지역’이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서도 대규모 훈련이 있었던지 고개와 급커브 지점 인근의 너른 공간에는 건장한 젊은이들이 무리 지어 있다. 작년에 전역하여 뒷자리에 앉아있는 아들녀석의 감회는 어떠할까?


[내린천의 상류인 미산계곡]

 
[살둔산장 입구에서. 예전의 오이밭에는 달맞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인제군 상남면은 방태산과 점봉산, 아침가리골, 그리고 미산계곡을 다니면서 내게 익숙해진 이름이다. 상남에서 미산계곡을 따라 나있는 이차선 도로는 홍천군 내면의 깊숙한 곳들을 지나, 양양과 평창으로 빠져나가는 56 국도와 이어진다. 美山이라는 이름에서 계곡에 대해 가지는 지역 사람들의 깊은 애정을 느낄 있다. 홍천군 내면 경계 이정표를 만나 잠시 진행하면 다리가 나온다. 다리에서 오른쪽 2 방향을 바라보면 이층 누각처럼 생긴 건물이 보인다. 바로 살둔산장이다. 예전 ‘오지에 갇힌 시간들’이라는 나의 답사기록에서 2 전에 주인이 바뀌었고, 산장 인근의 마을 분이 관리를 맡고 있다고 소개한 있다. 당시(2005 5) 2주째 그곳을 찾았던 나의 기록은 이렇다.


[살둔산장 전경]

 

『오지답사를 즐기는 사람들과 산꾼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던 살둔산장은 송사에 휘말려, 지금까지 곳을 지키고 있던 분들이 떠나야 상황이 되어버렸답니다. 아니 그저께 빈집임을 확인했습니다. 늙고 새끼를 , 야윌 대로 야윈 고양이(아마 이름이 '연우'라는 고양이일 겁니다)만이 깡마른 ,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고, 불과 일주일 전만해도 한쪽에 포개져 집의 추억과 역사를 말해주던 ‘장작화로’ 남포등(램프) 모두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가랑비를 맞으며 주인 없는 집을 잠시 둘러보고 나왔다. 산장과 주변은 비교적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었다. 살둔산장은 백담산장을 짓고 설악의 품에 안기었던 윤두선씨가 국립공원에 백담산장을 내어주고 곳을 찾던 , 첩첩산중의 오지에 오대산 월정사 도목수를 데리고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56 국도마저도 비포장이던 시절, 마을을 에워싸는  물길 곳에 다리도 걸쳐지지 않았을 때이니 오지중의 오지로 고립되어있던 곳이다. 건물의 특이한 모습도 그러하거니와, 이곳을 찾은 사람은 모두 식구가 되도록 유도하는 주인의 배려 깊은 산장 운영으로 산악인들과 오지탐사를 즐기는 이들에게 많은 추억을 남겨준 곳이다.

 

참고로 ‘살()둔’이라는 이름은 ‘정감록’의 십승지지 중의 곳인 삼둔사가리 중의 하나를 말하며, 바로 산장 주변에 있는 마을 전체를 일컫는다. 삼둔사가리는 ().월둔.달둔의 삼둔과, 아침가리.적가리.연가리.명지가리의 사가리를 말하며, 이들 지역은 강원도 인제와 홍천의 방태산과 구룡덕봉 등의 산자락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대체로 살펴보면 ‘둔’은 조금 드러난 언덕에, ‘가리’는 골짜기 깊은 곳에서 밭을 갈고 살아갈 만한 곳을 지칭하는 듯하다.  살둔을 생둔이라고도 부르는 것은 일제 ‘살’을 한자어 生으로 표기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미산계곡과 살둔산장, 부산으로 향하는 길을 이토록 둘러가게 정도로 곳은 내가 좋아하는 線과 點이. 살둔산장에서 나와 다리를 하나 지나고 마치 마을을 막고 있는 듯한 고개를 올라선 계속 달려가면, 홍천 내면 광원3거리에 닿으며 56 국도와 만난다. 왼쪽 길은 구룡령 높은 고개를 넘어 양양으로 이어지는데, 구룡령은 백두대간의 산줄기를 이루는 곳으로 북쪽으로는 설악산, 남쪽으로는 오대산으로 마루금을 잇는다. 광원3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역시 홍천 내면 창촌리에 닿는다. 여기서 왼쪽으로 진행하면 계방산 어깨에 걸쳐있는 높은 고개인 운두령을 넘어 평창의 속사3거리를 만나게 되며, 이곳에서 진부로 방향을 잡으면 오대산 자락으로 들어서게 된다. 창촌리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홍천읍으로 이어진다.

 

진부에서 6(59) 국도로 운행하다 보면 월정사 갈림길이 나온다. 국도를 계속 진행하면

진고개를 넘어 강릉으로 이어진다. 진고개 역시 백두대간 상의 고개로 오대산群과 황병산群의 마루금을 잇는다. 월정사 매표소를 지나서는 8Km 깊숙한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상원사로 먼저 향했다. 오랜 동안의 차량통행으로 다져진 비포장도로이지만, 비가 내려 진창으로 변한 길은 차도 사람도 헐떡거리게 만든다. 속에서 바라보는 상원사 경내는 한층 차분해 보인다. 모처럼 문수전 법당에 들어가 예불을 하였다.


[상원사 문수전]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 보천과 효명이라는 왕자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의 이름은 ‘진여원’이라고 한다. 월정사의 말사이며, 조선시대 세조와 인연이 깊은 절집이다. 세조가 목욕을 하다 친견한 문수보살(동자), 자객으로부터 세조를 살린 고양이, 세조가 목욕할 관대를 걸었다는 관대걸이 ,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지는 곳이다. 이곳에는 신라 성덕왕 대에 조성되었다는 국보(36) 범종이 있으며, 한국동란 당시 오대산의 많은 절집들이 소실되었지만 상원사는 한암스님의 목숨을 내건 저지로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상원사 입구 숲의 물봉선]

 
[상원사 입구의 노루오줌]


상원사에서 비로봉 방향으로 40여분 오르면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적멸보궁에 이르며,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적멸보궁 아래에 오대(五臺) 중위 하나인 中臺 사자암이 있다. 모처럼 상원사에서 점심공양을 하였다. 짙은 녹색을 전나무 숲이 참으로 맑다는 생각이 들자, 비로서 귀도 문을 열며 경쾌한 낙숫물 소리를 듣는다.


[상원사 주변의 전나무 숲]

 

월정사의 본당 역할을 하는 적광전(寂光殿) 앞에 있는 월정사 9층석탑(국보48) 석조보살좌상(보물139) 오랜 문화재에 대해 까막눈인 나에게(물론 지금도 그러하지만) ‘바라봄의 기쁨’을 주었던 것들이다. 지금은 석조보살좌상을 월정사 경내의 성보박물관에 모셔놓고 있지만, 처음 월정사를 찾았을 , 법당 앞에 있는 아름다운 탑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있는 석조보살좌상을 모습을 만나고는 마치 감전이라도 , 한참 동안 자리를 수가 없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처럼 탑과 따로 떨어져 건물 속의 갇혀있는 석조좌상에서 그때의 느낌을 찾기란 힘들다. 하지만 복된 미소를 바라보는 일이란 여전히 내게 즐거운 일이다.


[월정사 적광전, 팔각구층석탑. 예전 탑 왼쪽에서 탑을 바라보는 형태로 있던 석조보살좌상(위 작은 사진)은 월정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우아한 조형미를 갖춘 탑신과 상륜부의 화려한 금동장식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탑으로, 높이도 15.2m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탑이다.

 

성보박물관을 둘러보고 사천왕문을 벗어나니 마치 경내를 벗어난 듯하다. 하지만 차안(此岸)의 세계와 경계를 이루는 일주문까지는 곧장 10여분 걸어가야 하는데, 나무가 도열해 있는 길이 바로 유명한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다. 차량으로 답사를 하다 보면 주차장에서 바로 계곡을 건너오다 보니 숲길 걷는 일을 빠트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월정사 옆 계곡의 맑은 물]

 

시간이 조금 지체되기는 하였지만 숲길을 천천히 걸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느린 걸음으로 걷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나, 멋진 풍경을 만난 마음은 괜히 들떠 바쁘기만 하다. 속에서의 탁족, 초록 숲으로의 침잠, 그리고 달콤한 낮잠을 떠올려보는 순간, 어느 것도 내게 선택할 것이 없음을 깨닫게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

 

“이제 늦었는데, 그만 내려 가야지요”

[정선 가는 길에 만난 폭포]

 

진부를 벗어나는 , 영동고속도를 타지 않고 조금 여유를 부려, 정선으로 가는 59 국도를 탔다. 지난 해의 水害로 인한 대규모 도로 복구공사가 한창이라 운행이 몹시 더디다. 정선읍 가기 , 인공으로 물길을 듯한 낙차가 폭포를 만난다. 정선에서 영월로 접어드니 어둠이 접어들기 시작한다. 제천으로 이동한 ,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남행길에 오르며 2007년 여름 나들이를 접는다.  



 

☞여정: 속초 한화콘도-미시령터널-인제 남면<446 지방도>-인제 상남-미산계곡-홍천 내면-살둔산장-운두령-진부-상원사.월정사-정선-영월-제천-중앙고속도-부산

 

두류/조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