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조반정

병자호란 다시 읽기(30)이괄의 난이 끼친 영향④ [병자호란 다시 읽기] (30) 이괄(李适)의 난(亂)이 끼친 영향 Ⅳ 이괄의 난을 계기로 인조정권의 취약점과 한계는 여지없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인조정권이 구상하고 있던 계획들을 흐트러뜨렸다. 인조반정 성공 직후 ‘후금을 정벌하여 명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호기롭게 내세웠던 표방은 물거.. 더보기
병자호란 다시 읽기(29)이괄의 난이 일어나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29)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다Ⅲ 1624년 2월10일 이괄이 서울로 입성한 직후, 도원수 장만은 관군을 이끌고 서울을 향해 달렸다. 장만은 초조했다. 반란군에게 도성을 내주고 국왕으로 하여금 파천 길에 오르게 만든 일차적 책임이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장만은 파주 혜음.. 더보기
병자호란 다시 읽기(28)이괄의 난이 일어나다② [병자호란 다시 읽기] (28) 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다 Ⅱ 인조반정을 일으키던 당일, 대장 김류는 미적거렸다. 성공 여부를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2경에 모이기로 했던 약속을 어겼고, 그가 나타나지 않자 반정군 진영은 동요했다. 바로 그 때 군사들을 다잡아 대오를 안정시킨 사람이 .. 더보기
병자호란 다시 읽기(27)이괄의 난이 일어나다① [병자호란 다시 읽기] (27) 이괄의 난이 일어나다① 반정 직후 인조정권이 명에 대해 충성을 다짐했던 것과 맞물려 후금에 대한 적개심도 높아져 갔다. 인조와 신료들은 후금과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을 가상하고 작전과 승패 향방을 자주 논의하곤 했다. 하지만 후금과의 군사적 대결을 구체적으로 준.. 더보기
병자호란 이야기(26)인조반정과 외교적 파장③ [병자호란 다시 읽기] (26) 인조반정의 외교적 파장 Ⅲ 명 조정이 인조반정을 ‘찬탈’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조선의 새 정권을 승인하기로 결정한 것은 분명 자신들이 처한 수세(守勢)를 염두에 둔 결단이었다. 명 조정은 마치 ‘모문룡의 은혜’ 때문에 인조를 책봉하는 것처럼 포장했다.‘자격이 되지.. 더보기
병자호란 다시 읽기(25)인조반정과 외교적 파장② [병자호란 다시 읽기] (25) 인조반정의 외교적 파장Ⅱ 인조반정을 ‘찬탈’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조선을 후금과의 대결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절실했던 명은 고민을 거듭했다.‘찬탈’을 자행한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을 응징하여 상국으로서 명분을 살릴 것인가? 아니면 이미 바뀌어버린 조선의 현.. 더보기
병자호란 이야기(24)인조반정과 외교적 파장① [병자호란 다시 읽기] (24) 인조반정의 외교적 파장 Ⅰ 인조반정의 발생과 성공은 대외적으로도 커다란 파장을 몰고 왔다. 조선에서 정변이 일어나 광해군이 폐위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는 소식에 명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시 후금의 군사적 압박에 밀려 수세에 처해 있던 명에 조선은 가장 중.. 더보기
병자호란 이야기(23)심하전역과 인조반정⑤ [병자호란 다시 읽기] (23) 심하전역과 인조반정 Ⅴ 1623년(광해군 15) 3월13일 새벽, 광해군은 다급하게 창덕궁의 담을 넘었다. 내시의 등에 업힌 채 궁인 한 사람만을 대동한 초라한 몰골이었다. 자신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반정군(反正軍)의 함성 소리를 뒤로하고 그는 안국방(安國坊)의 여염으로 숨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