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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길/느낌이 있는 풍경

집북재, 그 깊은 그리움...

 

 

[산하계곡 때죽나무 낙화]

■천성산에 들다.(2006년 5월 31일)

산길 들머리, 훤하게 뚫린 신작로 때문인지 맑고 고운 수많은 물길이 모여든 계곡은 헐벗은 느낌으로 안타깝다. 道를 구하는 이들도 세속의 편의성과 규모의 유익성을 외면할 수는 없는가 보다. 새롭게 들어선 튼실한 흰색 콘크리트 다리는 초여름 정오의 태양 아래 속절없는 듯 마냥 눈 부시기만 하다.

계곡 합수점, 공룡능선은 이제 어엿한 이정표를 거느리고 있다. 하긴 8~900m대의 고스락을 3시간 이상 소요하는 걸음과 긴장감으로 산행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 어디 흔하던가. 이 곳 저 곳, 손길 발길 두던 곳들에는 예전에 없던 표식기들이 어지러이 달렸다. 주저 없이 성불암 계곡으로 방향을 잡다. 이내 악우비가 있는 암자 갈림길 오른쪽의 평탄한 숲길로 들어서며 모처럼 계곡의 속살로 들어선다.

 

 

[Canon] Canon EOS 350D DIGITAL (1/25)s iso100 F6.3
[성불암계곡으로 들어서는 숲]


우리 산자락에 '하지 마라'라는 위압적인 경고판이 별로 없던 시절, 스무 살을 갓 넘긴 한
청년은 이 계곡 오른쪽 능선 너머(중앙능선) 계곡(내원사)에서 야영을 시작하였고, 입영을 앞둔 이른 봄에는 친구들과 소주잔 기울이며 밤을 샌 아련한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세월이 지난 후, 밀려드는 행락객과 차량들에 그 계곡의 길과 물길을 넘겨준 후부터는 시나브로 지금 찾는 이 길로 들어오곤 했다. 그리고는 산길 주변, 희미하게나마 길의 흔적만 있으면 발들 들여놓고, 거미줄처럼 그려지는 개념도에 만족해 하던, 비록 치기 어리나 열정에 들떠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오늘 산행코스는 성불암계곡-집북재-산하계곡으로 이어지는 이른 바 계곡산행코스, 다른 말로 바꾸자면 실버산행, 아니, 산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길이라 하겠다. 


오늘, 굳이 산 정상에 마음을 두지않고 이 곳을 찾게 된 것은 바로 집북재를 만나기 위해서 이다.


천명의 성인이 나와서 천성(千聖)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이 산은, 산자락 곳곳에 원효대사의 체취가 서려있다. 집북, 한자와 우리말이 섞여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천명의 대중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서 북을 걸어 두던 곳’이라는 의미는 쉽게 다가온다.

정상(천성2봉)에서 내려서거나, 공룡능선을 힘들게 오른 후 완만한 산자락을 에돌며 한숨 돌리고픈 마음이 들 즈음, 혹은 꾀를 내어 중앙능선에서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슬그머니 왼쪽으로 끼어 들면 만나게 되는 곳,

낙동정맥의 마루금인 주능선에서 숲속의 예쁜 옹달샘을 들른 후, 산사면을 내려와 계곡 건너 가풀막진 오름길을 힘들게 올라서면 닿는 곳, 오늘 오른 성불암 코스가 자연스레 숲과 만나는 이 곳은, 신갈나무를 비롯한 참나무들이 성기게 서있는 너르고 평평한 고개이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쉬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넓은 공간만큼 넉넉한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혹은 '길이 사방으로 열림은, 길이 사방에서 모임'이라는 당연한 말을 떠올리며 삶의 한 방편으로 삼아 뜻을 세워두어도 좋을 일이다. 

그래서 나는 집북재라는 이름만으로도 ‘편안함과 위로’라는 이미지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엄격하자며 채근하던 나도 그 터무니없이 짧은 걸음에도 나를 질책하지 못할 것을 안다.

모처럼의 게으른 걸음은 계곡의 3단 폭포을 여유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쁨을 덤으로 안겨 준다.

 

 

[Canon] Canon EOS 350D DIGITAL (1/8)s iso200 F20.0

[하단폭포]

 

 

[Canon] Canon EOS 350D DIGITAL (1/10)s iso100 F20.0

 

[하단폭포 위]
 

 

[상단폭포]


다만, 집북재를 오르는 동안 내내 마음에 자리잡은 한가지 아쉬움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풀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동행한 아우에게 한마디 던졌다.

"얘들, 삐졌나 보다..."   

 집북재에서의 늦은 점심 후, 나의 바람과는 달리 그 곳에서 여유있는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된다. 텅 빈 그 곳에는 뜻밖에도 외로움이 한 움큼씩 묻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괜스레 서두르듯 내려서는 아우에게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뒷편의 비탈길을 내려서며 계곡을 만나 하산 길에 들어선다.

 

[집북재]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을 이 계곡은 아직도 때를 덜 타 조신한 모습이다. 산하계곡이라고 알고 있던 이 곳은, 안적암 계곡과 만나는 합수점 인근 이정표에 '한듬계곡’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Canon] Canon EOS 350D DIGITAL (1/125)s iso200 F5.6



노전암 텃밭에서 초여름 햇살에 발갛게 달아오른 낯으로 수줍은 웃음을 짓는 비구니스님의 모습이 해맑다.

 

[산하계곡]
 

 

 

 

[Canon] Canon EOS 350D DIGITAL (1/25)s iso100 F6.3




그저께 내린 비로 계곡의 수량이 적지않았음에도 문득 적요함이 느껴진 것은 그 때 즈음이었다. 가로로 늘어선 때죽나무 꽃잎을 하염없이 쳐다보자, 제 몸을 툭 떨구던 꽃잎에 갑자기 내 장년의 시간이 압축되며, 저만치 고개를 숙인 채 계곡을 내려서고 있는 한 청년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아, 나의 아름다운 디딤들이여...   

 


 

 

 

[Canon] Canon EOS 350D DIGITAL (1/25)s iso200 F5.6


 

 

 

 

[Canon] Canon EOS 350D DIGITAL (1/125)s iso200 F4.0

 

찔레꽃 향기가 짙고, 맑은 계곡이 새삼스럽게 시야에 들어오자 공룡의 등뼈가 눈부시다.  

 

 

[공룡능선]

 

 


두류/조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