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두화를 만나며
꽃이 핀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특히 5월에 들어서면 허겁지겁 보내는 일상을 풀꽃들에 의해 되돌아보게 되는 일이 매년 되풀이 되곤 한다.
5월은 선홍의 꽃들이 산자락에 꽃불을 일으키는가 하면, 삶터 가까운 곳에서는 흰 꽃 무리가 피어나며 마음을 가라앉게도 하는 시절이다. ‘이백로’의 이팝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을 보고, 집에 오는 길에 마을 앞 도로가에 있는 불두화를 찾았다. ‘수국백당’이라고도 불리는 이 나무는 아침산책길에서 만나, 언젠가부터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존재로 인연을 맺었다.
조금도 변함이 없는 나의 삶에 자격지심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왠지 만나야 할 것만 같아 다가갔더니,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며 나무는 격렬하게 제 몸을 흔든다.
식어버린 열정,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무력감의 갑옷을 이 몸짓에 떨구고 가시라!
2018.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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