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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山 情 無 限

회상-쥐똥나무를 만나며

 

 

 

회상-선릉의 쥐똥나무를 만나며

 

지난 1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행사 참여 차 남원을 출발하여 오랜만에 서울 삼성동을 찾았다.

 

행사장인 코엑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테헤란로 선릉 인근에, 내가 지리산 자락으로 귀농귀촌하기 전 2006년도까지 근무하던 옛 직장과 숙소가 있다. 모처럼 그 공간이 생각이 나서 이른 저녁시간 시간을 내어 빠른 걸음으로 선릉으로 향하였다. 시골에서의 삶이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인지, 아니면 뭔가 외면하고 싶어서인지, 서울에서의 동선 이동은 늘 빠르다는 느낌의 걸음으로 이루어지곤 한다.

 

 

땀을 흘리면서 긴 횡단보도를 두 개 건너 큰 골목으로 들어서자 다닥다닥 붙은 낯익은 연립주택들이 보이고(숙소가 이곳에 있었다), 세탁소와 편의점을 지나자 저만치 선릉의 숲과 숲을 에워싸고 있는 담장이 보인다. 그 사이 내게 생긴 작은 변화는 나의 걸음이 느려져 있고, 아까부터 오감을 에워싸고 있던 이방인의 느낌이 조금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윽고 선릉숲을 따라 나있는 산책길에 닿았다. 예전에 없던 5분에 400, 800원 하는 주차요금 시스템이 낯설다. 사람 재우는 것만큼 자동차 재우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은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시골촌부인 요즘의 나에게는 좀 생뚱맞은 느낌이 든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선릉 담장길을 따라 테헤란로로 길이 이어지고, 그 빌딩 숲 어딘가에 나의 옛 일터가 있었다. 나의 40대 중후반기 이름하여 ‘황금의 시절’이라고 할 만한 시절, 보람과 좌절, 그리고 희망과 절망을 맞이할 때 나는 이 길을 걸으면서 많은 상념에 빠지곤 했었다. 별일도 아니지만 치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조직의 분위기가 팽배해 있을 때,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만큼은 주저 없이 지리산은 물론 전국의 산을 찾아 숲으로 들어갔다. 주말에 사무실을 빠져나와 대용량의 배낭을 들고 그 복잡하던 2호선 지하철을 탈 때 쩔쩔매면서 민망해 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당시 그런 산행기록을 정리하여, 모 일간지에 산악안내관련 필진으로 참여하며 1년6개월 동안 기고까지 했으니, 다소 보수적인 사풍(社風)의 회사가 바라보는 시선은 냉랭하였고 가깝게 지내던 동료는 신문기고를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는 충고를 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산에 더욱 침잠하면서 일상의 갈등들을 나의 방식대로 소화시키려 했다. 그때 백두대간종주산행의 대장정을 시작했으며, 틈나는 대로 강원도 인제와 홍천의 삼둔사가리 오지의 산자락을 더듬거리기도 했다. 지리산꾼인 나로서는 황홀한 외도였던 셈이고, 나다운 치유의 시간으로 맞이하였던 듯하다.

 

 

그러던 중 갓 부임한 경영책임자의 자의적 판단은 부서를 책임 맡고 있던 나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주었고, 게임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겠지만, 이에 밀리지 않으려 나는 감정적 대응을 하기도 했었다. 이즈음 대립과 갈등이 빚어내는 스트레스에 둘러싸인 나는 나의 생각을 온통 산으로 에워싸며 탈출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요즘 말하는 인생이모작에 대한 단초를 열면서 ‘나다운 삶’에 대한 명제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끝은 '나답게 살자‘라는 자기합리화 끝에 나를 지리산으로 향하게 한 것이다.

 

 

지금 새로운 삶에 임하고 있는 나로서 가만히 돌이켜보면, 오래전 이곳에서 벌어졌던 그 치열한 대립과 갈등, 모든 과정이 나의 삶의 진화 과정에 있어 중요한 성장통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본다. 비록 삶의 질에 차이가 있고, 자기합리화와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어떠하던 간에 늙음의 수세를 걱정하며 더 치열하지 않아도 되며, 나는 여전히 젊고 능동적으로 역동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

 

선릉 동편 담장 모퉁이를 돌아가기 전, 나는 걸음을 멈추고 담장을 따라 나있는 키작은 나무덤불을 바라보며 반가운 모습들을 찾았다.

 

 

아! 이 녀석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란...

 

 

 

 

 

 

8년전 봄, 어느 날 아침, 생각과 걸음을 같이하며 어깨를 늘어뜨리고 사무실로 향하던 때, 미백새의 예쁜 모습으로 멋진 향기를 뿜던 이 녀석을 만났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수더분한 모습이 그 예쁘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사실이 기특했다고나할까. 그 후부터는 출근길에 이 녀석들과 눈 맞추는 일이 계속 이어지며 이상스레 정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 예쁜 녀석을 ‘쥐와 똥’이라는 지저분한 단어를 묶어'쥐똥나무‘ '라고 이름 지음은 온당치 않다고 온 동네방네 그 이름의 부당성을 알리고 다녔으니 나의 이 나무에 대한 애정은 모두 짐작하시리라. 또한 그러함은 사실 처음부터 이 녀석의 이름이 정겨웠기 때문임을... 늘 산으로 들어가서 숲의 향기를 만끽하던 나였지만, 나는 일상의 흐름에서도 이러한 만남으로 작은 행복을 갖기도 했으니, 내게 있어 이 녀석의 존재감은 선릉숲의 키 크고 멋진 소나무를 비롯한 어느 수목보다도 단연 으뜸이다.

 

 

귀농귀촌해서 시골에서 진행하는 업무상의 일로 서울 올라와, 옛 삶의 흔적을 회상하는 일이 뜻밖에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초로의 시골촌부와 더 이상 어울리지 않을 듯한 서울 강남도심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소중한 ‘디딤‘의 공간이었다는 생각은 지금 내가 헤쳐 나가는, 혹은 앞으로 헤쳐 나아갈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한다. 그냥 지나가는 ’선‘으로서의 시간이 아니라 나의 많은 시간들이 모인 ’입체적‘인, 섣불리 허비해서는 안 될 부피를 지닌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 오랫동안 품고 있던 갈등의 앙금 하나를 쥐똥나무를 바라보며 풀고 간다. ‘단지 그는 그이고 나는 나이기 때문에 그러하였을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나저나 아직도 남아 있는 목로주점이 있을까? 날 알아보는 사람은 있을까?

 

2013.8.16

 

두류 조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