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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병자호란 다시 읽기(64)외환(外患) 속의 내우(內憂) [병자호란 다시 읽기] (64) 외환(外患) 속의 내우(內憂) 재원 문제 때문에 청북(淸北) 지역의 성곽 수리와 군량 공급마저 여의치 않았던 상황에서 노유녕에게 십만 냥 가까운 은화를 뜯겼던 것은 너무나 큰 손실이었다. 하지만 인조는 노유녕이 다녀간 뒤 상당히 고무되었다. 명 조정이 왕세자를 책봉해 .. 더보기
병자호란 다시 읽기(63)엎친데 덥치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63) 엎친 데 덮치다 공유덕과 경중명 일당의 후금 귀순은 조선에 치명적이었다. 조선은 명의 강요 때문에 ‘공경 사건’을 놓고 벌어진 명과 후금의 싸움에 말려들었다. 하지만 공경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고, 결국 후금으로부터 원망만 사고 말았다. 후금은, 공경의 귀순을 저지.. 더보기
병자호란 다시 읽기(62)반란자와 귀순자들③ [병자호란 다시 읽기] (62) 반란자와 귀순자들 Ⅲ 조명연합군의 필사적인 저지 작전에도 불구하고 공유덕과 경중명은 후금으로 귀순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중간에 다소의 손실이 있었지만 공경(孔耿)이 끌고 갔던 전함과 수군의 대부분은 후금군으로 넘어갔다. 후금의 홍타이지는 공경이 가져온 전함.. 더보기
병자호란 다시 읽기(61)반란자와 귀순자들② [병자호란 다시 읽기](61) 반란자와 귀순자들 Ⅱ 공유덕과 경중명이 이끄는 반란군이 후금으로 도주하려 하자 명에는 비상이 걸렸다. 명 조정은 주문욱(周文郁)에게 수군을 이끌고 공경(孔耿) 일당을 저지하도록 지시했다. 주문욱은 나름대로 분투했지만 반란군의 도주를 차단하지 못했다. 급기야 공유.. 더보기
병자호란 다시 읽기(60)반란자와 귀순자들① [병자호란 다시 읽기] (60) 반란자와 귀순자들Ⅰ 明장수 공유덕·경중명 수군과 함선 이끌고 후금에 투항 후금이 명을 압박하면서 조선과 후금의 관계 또한 살얼음판을 걷고 있던 1633년 무렵, 세 나라의 관계를 뿌리째 흔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반란을 일으켜 등주(登州)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명나라 .. 더보기
병자호란 다시 읽기<59>곤혹스런 상태가 지속되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lt;59&gt; 곤혹스러운 상태가 지속되다 조선이 후금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려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다.1630년 무렵부터 병자호란이 일어날 때까지 후금이 요구했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신들과의 교역에 성의를 보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도( 島)의 한.. 더보기
[병자호란 다시 읽기](58)전운 그림자에 불안, 막막한 현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58) 전운 그림자에 불안, 막막한 현실 후금이 대릉하 원정에 앞서 평안도 일원에 병력을 보내 위협하자 조선의 위기의식은 바짝 높아졌다. 인조는 강화도 정비에 몰두하는 한편, 후금의 침략에 대비한 군사적 방책 마련에도 신경을 썼다.1631년 8월, 인조는 서쪽 교외로 나아가 무.. 더보기
병자호란 다시 읽기(57)대릉하성의 비극② [서울신문] [병자호란 다시 읽기](57) 대릉하성의 비극 (2) 명이 조대수를 시켜 대릉하성을 쌓은 목적은 명확했다. 산해관의 방어를 확고히 하면서, 후금에 빼앗긴 요서(遼西)와 요동을 수복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후금군은 성의 방어 시설이 채 완공되기도 전에 들이닥쳤다. 조대수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