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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역사]

벽송령,佛祖의 맥을 잇다-지명에 나타난 불교⑨

 

▣地名에 나타난 한국불교/불일회보(제97호)/1989.1.1

 

♧지리산과 불교-9

 

♧벽송령(碧松嶺) () ()-2

 

♣글/白雲/스님/부산 미륵사

 

-[전편에서 계속]

 

부용영관(芙蓉靈觀)스님은 법호를 부용 또는 은암(隱庵)이라 하고 연선도인(蓮船道人)이란 별호도 썼으며 성종(成宗) 16년에 경남 삼천포(三千浦)에서 태어났다. 13 가만히 집을 떠나 덕이산(德異山) 고행선자(苦行禪子)에게 의탁하여 3 동안 시봉하고 중이 되었다. 17세에 신총(信聰) 강백에게 경론을 배우고 위봉선사(威鳳禪師)에게 선리(禪理) 얻었다.

 

이어 무주 구천동(茂朱 九千洞)으로 들어가 손수 토굴을 묻고 9 간이나 애써 정진하여 본분납승(本分衲僧) 되었다. 중종(中宗) 4 25 용문산(龍門山) 조우선사(祖愚禪師) 참알(참알알)하고 5 뒤에는 청평산(淸平山) 학매(學梅)선사에게 선지(禪旨) 물었다. 35 때는 도반 조운(祖雲) 함께 금강산 대존암(大尊庵)에서 2년을 정진하였고 미륵 내원암(內院庵)에서는 9 동안 독방을 얻어 장좌불와(長座不臥)하였다.

 

이렇게 제방을 다니며 정진만을 쌓은 스님은 45 비로소 지리산 벽송사로 벽송선사를 찾아 갔다. 벽송선사는 66세의 노령이었는데 부용을 제자로 맞아들이고는 천하를 얻은 매우 기뻐하였으며, 면담으로 법기(法器)임을 간파하고 대법(大法) 부촉하였다. 이렇게 하여 태고보우(太古普愚)로부터 환암혼수(幻庵混修), 구곡각운(龜谷覺雲), 벽계정심(碧溪正心), 벽송지엄(碧松智嚴)으로 내려오던 전전상승(展轉相承) 불조(佛祖) 정맥(正脈) 부용스님에게로 이어졌으며 다시 서산대사에게로 이어져서 이씨 조선 오백년 중에서 가장 크게 법화(法化) 떨치는 전성기(全盛期) 이루게 되었다.

 

이렇게 살펴볼 적에 벽소령의 남과 북은 이조초기에 다소 위축되었던 불교가 다시 꽃피우게 되는 시발점이 셈이다. 북쪽의 벽송사(碧松寺) 벽안종사(碧眼宗師) 태어난 산실이라 한다면 남쪽의 의신동천(義信洞天) 벽안종사들이 길러진 도량이라 함이 적절한 표현일 싶다.

 

부용 영관선사는 깨친 뒤에도 왕생극락(往生極樂) 발원하고 노년에는 매양 아미타불을 염송하였으며 무렵에는 연선도인(蓮船道人)이라는 별호로써 부르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오도(悟道) 후에 미타염불을 주로 하신 스님으로는 중국 송나라 떼의 영명연수(永明延壽) 선사를 첫손에 꼽는다. 영명선사는 북송(北宋) 시대의 스님으로서 속성은 왕씨(王氏), 임안부 여항에서 태어났으며 28 취암(翠岩)선사에게 중이 되고 천태덕소국사(天台德韶國師)에게 참알하여 선지(禪旨) 깨닫고 법안종(法眼宗) 3(3) 되었다. 스님은 깨치신 후에 매일 아미타불을 십만송(十萬誦)하고 종경록(宗鏡錄), 만산동귀집(萬善同歸集) 등을 저술하느라 매일 천자씩 글을 썼다.

 

선사는 () 있고 정토(淨土) 있으면 마치 법이 뿔을 가진 격이라 하여 참선과 염불을 겸수(兼修)하기를 제자들에게 권장하였다. 영명선사의 영향으로 참선하다가 만년에 염불로 선회하는 경향이 매우 많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선지식 가운데는 부용선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부용선사는 슬하에 서산.부휴(浮休) 거승(巨僧) 두어 이조불교의 중흥조가 되었으니 이는 부용선사의 복이라면 복이 아닐 없다. 서산대사는 벽송령의 남쪽인 의신동천에서 중이 되어 거기에서 자랐고 부휴대사는 벽송령의 북쪽 지리산에서 중이 되어 자랐으니 모두는 벽송령과 깊은 인과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휴선사는 벽송령 남쪽인 칠불암(七佛庵)에서 여생을 마쳤으며 스님의 제자들도 모두 벽송령의 남과 북을 넘나들며 도를 닦고 뜻을 폈으니 실로 벽송령의 신비로운 힘은 가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 하겠다.

 

[]

 

▣주

[위의 글은 부산 미륵사 주지스님이신 백운(白雲)스님이 1989년 1월1일 불교관련 잡지 불일회보(佛日會報)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정설(定說)로 받아들여지거나 혹은 전해 내려오던 지리산의 역사.이야기와는 다소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만, 나름대로 논리와 의미를 지닌 글이라 여겨지며, 특히 수많은 사암(寺庵)이 존재하며 불국토(佛國土)를 이루었을 지리산에 대하여 불교의 문수보살(文殊菩薩)과 관련하여 내린 여러 곳의 지명 해석은 무척 독특하고 흥미롭기까지 합니다. 재작년, 약 20년 전 지면(紙面)을 통해 나왔던 이 기록을 뒤늦게 발견하고 흥분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뒷날의 공부를 위한 자료로 삼고자 기고문을 편집하여 이곳에 옮겨놓습니다.]/[두류]

 

백운스님 약력
·1934 전남
·53 동산스님을 은사로 비구계 수지
·60~82 영동 중화사, 포항 오어사, 경기 영월암, 김해 장유암 주지 역임·범어사 지리산 토굴 등지에서 정진
·71~87 화엄사, 범어사, 송광사 강사
·현재 부산 미륵사에 주석
·<양치는 성자> <진묵대사> <부설거사>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