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山 情 無 限

사랑이라는 말

 

[복수초. 김기훈 사진]

 

 

복효근(시인)

 

새삼 이 겨울에 야생화를 예로 들어 얘기하자니 철에 맞지 않은 느낌이 없지 않으나 평소 절실하게 느껴왔던 것이라 몇 마디 적어본다. 틈만 나면 하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활동하는 들꽃모임의 이름이 “지리산 들꽃 사랑”이다. 지난 한 해도 주말이면 대여섯 명이 가까운 지리산 주변의 들로 산으로 들꽃을 찾아나서 구경을 했다. 구경한다고 했지만 들꽃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관찰 정도에 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문적인 연구단계에 이른 사람도 없지 않다.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은 대부분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관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들 카메라에 꽃을 담아간다.

 현장에 나가보면 들꽃을 사랑하는 모임이 우리뿐만 있는 게 아니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그리고 인터넷과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들꽃에 대한 관심은 전국적인 현상인 것 같다. 가령 ‘부안에 변산바람꽃이 피었네’ 하는 소식이 퍼지면 관광버스로 전국에서 그야말로 떼로 몰려든다. 여기에서 발견하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야생화 사랑’이니 우리처럼 ‘들꽃 사랑’이니, ‘우리 꽃 사랑’이니 ‘자연 사랑’이니 하는 명찰을 달고 있다는 점이다.

 꽃 사진을 찍는 탐사객들이 지나간 자리는 거의 폐허가 되고 만다. 그 모양이 뚜렷하고 색깔이 선명한 것만을 담다보니 다른 들꽃들을 돌볼 틈이 없는 것이다. 마구 짓밟고 헤쳐놓기 일쑤다. 심지어는 전지가위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에 방해가 되는 주위의 ‘잡풀’들을 다 제거하고 꽃도 필요한 것만 남겨놓고 따버리고서 사진을 찍는다. 양지쪽에 피어있는 복수초꽃을 꺾어다가 눈 속에 핀 상황으로 연출하는 것을 실제로 목격하기도 하였다. 그것을 점잖게 지적했다가 “나도 당신만큼 꽃을 사랑할 줄 압니다.”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은 적도 있다. 해마다 들꽃 군락지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이 그의 시에서 꽃을 뽑아들고 “이 꽃을 안다면 신을 알 수 있을 텐데”라고 노래했던 것을 두고 에리히 프롬은 ‘소유적인’ 삶의 행태라고 비판했던 것을 기억한다. 뽑히는 순간 생명이 다 해버리는 그 꽃을 두고 신을 운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랑은 소유한다고 성취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 서로의 삶의 가치를 돋워 주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자연을 대하는 우리 옛 어른들의 사랑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예가 있다. 우리 옛 어른들은 수채 구멍에 뜨거운 물을 부어야만 할 때 “어쒸, 눈감아라.” 했단다. 거기에 살고 있는 실지렁이랑 다른 여러 미생물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그것들이 음식물 찌꺼기를 분해하여 개울물을 맑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옛 어른들은 뜨거운 물이 들어가니 조심하라고 실지렁이 따위들에게 경고를 했던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대상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를 배려한다는 뜻은 아닐까.

 다시 우리의 ‘자연 사랑’이니 ‘들꽃 사랑’이니 하는 말들을 돌아본다. 말은 마음이다. 실지렁이 따위에게 말을 했다는 것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들꽃 사랑’이라고 한 우리의 말 속에 사랑의 마음이 담겨있는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그것을 사랑한다고 하진 않았는지 먼저 반성해 볼 일이다. 그것이 어떠한 사랑이든지 상생의 마음이 담겨있지 않으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다.

 

[경남일보]

'▣ 山 情 無 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리산생명연대에서 온 편지  (0) 2007.02.13
2007년 시산제 축문  (0) 2007.01.11
'여벌'은 필수다.  (0) 2006.12.11
'형, 난 틀렸어'의 주인공  (0) 2006.11.18
지리산꾼들의 체육대회  (0) 2006.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