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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산길]

오대 주산(산청-하동)

 

[2004년 4월, 주산에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과 산자락]

『가을철 산불경방기간(11.15~12.15일)으로 국립공원 입산통제가 시작됩니다. 이 기간에는 지리산을 바라보는 산행을 테마로 삼아 지리산을 두르고 있는 산자락을 찾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산행이 될 듯합니다. 지리산 천왕봉 바로 남쪽에서 천왕봉으로 올려다보는 산, 예전부터 지리산의 정기가 모인 곳이라 하여 공부하는 이들이 많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주인 '主'를 이름으로 갖고 있는 주산을 소개합니다.』[두류]

 

영남의 산-주산

831m·경남 산청-하동
수정결사 일으켰던 불국토 상대
·중대·하대·좌대·우대 가져

지리산에는 다른 산보다 대(臺)가 많다. 일반적으로 대란 다른 곳보다 우뚝 높이 솟아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곳을 말한다. 그러나 지리산에서 대라고 말할 때는 수행처, 수도처를 뜻하는 것으로 많은 분들이 말하여 왔고 또 알고들 있다,


주산(831.3m)은 지리산과 떨어져 있다고 하여 독립된 산이란 말도 한다. 하지만 영신봉에서 흘러내린 능선 중 한 가닥이 낙남정맥을 이루며 부산 다대포 앞까지 흘러갔고, 다른 한 가닥은 천왕봉에 이끌리듯 감아 돌다가 우뚝 주산을 일으켰다.

외공 마을 앞을 흐르는 덕천강을 건너 구곡산과 마주한 산이 주산이다. 그런데 주산을 말할 때는 항상 앞에 오대를 붙여 ‘오대 주산’이라고 공부꾼과 기도꾼은 물론 무당들도 말하여 왔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옛날부터 그렇게 모두들 불러와서 그렇다”는 대답만 돌아와, 궁금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지리산에는 8대니 10대니 하며 전해지는 것 외에도 세존대, 문창대, 무착대, 서산대, 소년대, 의론대, 창불대, 신선대, 청량대, 고소대, 봉황대, 취적대, 마적대, 환희대, 금대, 오대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이렇게 멀리 내다보는 곳을 뜻하는 대를 수행처로 지칭하게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신령한 지리산의 멀리 보는 대에서만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수행처가 대가 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상대, 중대, 하대, 좌·우대가 있는 오대사가 있어 오대 주산이라 불렀다고 하나 내 생각엔 그 반대라고 본다. 예부터 공부하기 좋은 신비하고 영험한 터가 있어 그곳을 찾은 수행자들에 의해 오대사란 절이 지어졌다고 봄이 훨씬 자연스럽다.

 

대각국사 의천 “큰 법 머물 곳”

고려 대각국사 의천 지리산을 둘러보고 이곳 오대사터에 이르러 빼어난 산세에 경탄하고, 이곳은 큰 법이 머물 곳이라 했다. 그 뒤 진억이란 사람이 발심하여 수정사란 큰 절을 창건해 우리 불교사에 아주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불국토를 이루려는 수정결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절 안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고, 오는 사람은 거지나 부자나 받아들이는 데 차별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대각을 이루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절 밖을 나가지 않겠다고 서약까지 하며 2,000명이 넘게 용맹정진으로 공부에 임했다고 한다.

이제 끝까지 간 듯한 현재의 우리나라 불교 교단이 다시 거듭나기 위한 방안으로 제2의 수정결사를 해야 할 시기가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수정결사 시늉이라도 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혹시 오대는 다섯 수행터가 있어서가 아니라 주산 어느 자락 아니면 천왕봉이 보이는 어떤 곳에서 누군가 큰 깨달음을 이루어서 생긴 이름이 아닐까 궁금도 하여 주산 산행을 하기로 했다.

겨울이 바닥까지 깊어진 정월 6일 털보농원의 털보 부부와 셋이서 주산 남쪽 들머리인 옥종면 궁항리로 향했다. 우리 불교사에 획기적인 획을 그은 수정사 절터에는 국선도 지리산중 수련원인 백궁선원이 들어서 있다. 이제 불교로는 인간을 구원하는 일이 어려워진 것일까. ‘여기가 옛 절터라네’ 하고 기름을 짜는 돌확 하나와 외로운 부도 1기만이 처연히 뜰에 앉고 서 있었다.

안면이 있는 국선도인을 만나 뵙고 녹차 한 잔 나눠 마시며 이런 저런 주산 이야기를 들었다. 창 밖으로 아스라이 솟은 옥산이 그림처럼 다가왔다. “주산에서 다섯 성인이 나와 오대 주산이라고도 한다”며, “특히 주산에서 천왕봉 올려다보며 맞이하는 일출은 알려진 지리산 어느 곳의 일출에 못지않은 감동적 풍경”이라며 자랑이 대단하다.

호흡법으로 참나를 찾는 국선도는 수련의 자기성찰 방법으로도 때때로 주산을 오른다. 때문에 등산로를 정감 나게 다듬어져 놓았다. 산의 기운이 대단하다고도 자랑이다. 국선도 도량을 중심에 두고 좌우 중앙 세 갈래 등산로가 나 있다고 한다.

녹차 향에 물들다 덤으로 국선도의 향기에 취해 산행 시작 시각으론 좀 늦은 정오에 좌측 등산로를 택해 오르기 시작했다.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공터를 지나 기와를 쌓아놓은 사이를 통과해 조그만 다리를 건너니 대밭 속으로 길이 이어진다.

푸르른 대밭을 통과하자 상수리나무들이 겨울 볕을 쬐느라 정갈하게 서 있다. 키들이 일정해 누가 심은 듯 가지런하다. 허리까지 자란 산죽밭 사이로 길은 뻗고 굽고 감돌고 있다. 낙엽이 곱게 깔린 길을 가니 낭만파 산꾼이 된 기분이다. 상쾌해 콧노래가 나와 천천히 앞서거니 뒷서거니 올랐다.

 

북쪽으로 천왕봉 속살까지 보여

주산 정상에서 정남으로 뻗어내린 주능선까지는 40분이 소요됐다. 여기서부터는 경사도 완만해지고 조망도 툭 트인다. 낙남정맥이 주산으로 뻗어오기 2km 전에서 남으로 흘러 질매재를 이루며 달려가고, 또 한 가닥 동으로 흘러나와 주산을 만든 능선이 모두 보인다. 서쪽 칠성봉 너머로는 멀리 광양 백운산이 하늘금을 긋고 있다.

넓은 공터를 지나 30분. 땀이 등허리에 날 즈음 가는 방향으로 천왕봉이 고개를 내밀고 우릴 맞았다. 넓은 공터가 있는 정상은 천왕봉을 보자마자 이내 나타났다. 정상은 억새가 둘러쳐 있고 조망이 툭 트여 있다. 금오산, 달음산 칠성봉, 형제봉, 백운산, 억불봉, 깃대봉, 거사봉, 삼신봉이 남, 동, 서로 솟아 있고, 북쪽으로 천왕봉이 속살까지 드러난 듯 환히 보였다. 촛대봉, 써리봉, 시루봉도 눈에 어린다. 참으로 전망이 뛰어나다. 이 산에서 천왕봉을 보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을 얻을 만하여 오대 주산이라고 하는 걸까?

털보 청곡 부부가 가지고 온 밥과 김치, 귤, 군고구마, 그리고 홍삼차를 곁들여 점심을 하고 사방의 경치를 카매라에 담았다. 봉 주위로 나무들이 높게 자라나 천왕봉을 가리고 있다. 누군가 천왕봉 조망을 위해  주위의 나무를 베어 놓았다. 참 고마운 생각이 든다.

 

나도 가지고 온 접는 톱으로 봉우리에서 조금 내려가 천왕봉 시야를 가린 10cm 둥치 나무 하나를 베어서 살아 있는 나무처럼 서 있게 해 놓았다. 그대로 두는 것만이 자연 보전이고 능사이고 경전인 양 떠받드는 이들에게는 논란의 소지가 될 수도 있겠다. 옛날보다 산 능선을 타는 재미가 없어졌다. 나무들이 자라나 조망터나 전망터를 울창하게 덮어 어디나 숲속이 되어버렸으니-.

하산은 천왕봉을 계속 보며 북쪽으로 뻗은 능선으로 내려섰다. 주산 산행은 덮어놓고 남쪽 백궁선원에서 올라와 천왕봉을 조망하고 명상하다 북쪽으로 내려가며 계속 천왕봉 보는 맛이 최고의 패턴이 될 것 같다. 북쪽 능선이라 잔설이 살풋 낙엽 위에 깔려 있다.

계속 산길이 잘 나 있어 걷기 좋았다. 송전탑을 지나 산허리 뚫린 임도를 100m 타고 내려 1시간 정도 되어 북쪽 들머리가 되는 삼성연수원으로 내려왔다. 삼성연수원의 연수과정 중 하나로 주산 산행이 포함돼 있기 때문인지 산길이 너무 잘 나 있다.

하산은 1시간 남짓 걸렸다. 연수원 바로 아래 대숲에 묻혀 있는 고즈넉한 정각사를 둘러보고 나니 해가 기울었다. 산새들도 저물어 가는 시린 하늘을 날아 보금자리 대숲으로 오고 있다. 산을 넘는 데 고작해야 4시간 남짓 걸렸다.

/글·사진 성락건 지리산 다오실 방장

진주 산악인 출신으로 가우리상카(7,134m) 원정도 다녀왔으나, 이제는 수행자로서 살아가고 있다. 지리산 삼신봉 아래 묵계마을에서 찻집 다오실 운영. 저서로 <남녘의 산>이 있다.

 

교통
진주→옥종  1일 약 30회(07:00~20:20) 운행.
옥종→궁항리  1일 3회(07:20, 15:00, 19:00) 버스 운행.
중산리→진주  삼성연수원쪽으로 내려간 이후엔 중산리 내대에서 진주 가는 버스가 수시로 있다.

숙박
궁항리에 청학동망태기(055-884-1196), 위태리에 황토정(883-7385) 등의 업소가 있다. 그 외 시천면 소재지인 덕산, 그리고 중산리 내대에 숙박업소가 많다.

 

 

 

[월간 山지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