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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글방/옛글과의 만남

산의 철학, 산의 미학(3)-정민

산의 철학, 산의 미학
 
 
 
산아, 우뚝 솟은 산아
 
 
선인들에게 산은 이렇듯 경배와 찬미의 대상으로 존재해왔다. 좋은 글을 지으려면 讀萬卷書 行萬里路, 즉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의 길을 걸어 가슴 속에 호연한 기상을 품어야 한다. 그제서야 天地山河의 정기가 폐부에 스며 들어 江山의 도움을 받게 되니 그 글에 그윽한 향기가 있고, 상쾌한 솔바람 소리가 울려나오게 된다. 가슴 속에 한폭의 丘壑을 품어야만 그림도 그릴 수 있고, 산을 보아야만 글도 지을 수 있다. 이제 산과 그곳의 삶을 예찬한 선인들의 시를 몇 수 감상해 보기로 하자.
 
 
천 석 들이 저 큰 종을 보게나                 
크게 치지 않으면 두드려도 소리 없네          
만고에 우뚝한 천왕봉                         
하늘이 울려도 울리질 않네                    
請看千石鐘  非大구無聲
萬古天王峰  天鳴猶不鳴
 
 
曺植의 〈天王峰〉이란 작품이다. 큰 종은 거기에 맞는 공이가 있어야 한다. 젓가락으로 두드려 범종의 소리를 어찌 들을까. 큰 시루를 엎어 놓은듯, 엄청난 종을 구름 위에 매달아 놓은 것처럼 천왕봉은 오늘도 萬古常靑의 자태로 언제나 거기 서 있다. 누가 저 종을 소리나게 울릴 수 있으랴. 하늘이 천둥 번개로 공이 삼아 꽝꽝 울려 대도 산은 搖之不動, 끄떡도 하지 않는다. 날마다 산 기슭 정자에 앉아 산을 보며 나는 浩然之氣를 기른다. 산을 닮아간다. 산을 종으로 類比하여 바라본 발상도 재치 있거니와, 선비의 의연한 마음 가짐이 범접할 수 없는 기상으로 압도해 온다.
 
 
금강산 일만하고 이천 봉우리   
높고 낮기 제각금 같지 않구나.   
보게나 아침해 떠오를제면   
높은 곳이 제일 먼저 붉어지나니.  
一萬二千峯  高低自不同
君看日輪上  高處最先紅
 
 
成石 의 〈楓岳〉이란 작품이다. 동해 위로 떠오른 아침 해가 일만 이천의 묏부리 위로 일제히 부서진다. 높이가 제각금이니, 가장 높은 봉우리부터 햇살을 받기 시작하여 점차 금강산의 진면목이 차례로 눈앞에 펼쳐진다. 장엄한 광경이다. 그러나 시인은 단지 산의 장엄만을 예찬하지 않는다. 마치 산이 제 높이에 따라 햇살을 먼저 받고 나중 받음이 있듯, 삶의 이치를 깨닫는데도 사람의 자질에 따라 先後가 있고 深淺이 있기 마련인 때문이다.
 
 
산과 구름 모두 다 희고 희거니                
구름인지 산인지 분간 못하네                  
구름 가자 산만이 홀로 섰구나                 
일만이야 이천봉 금강이라네                   
山與雲俱白  雲山不辨容
雲歸山獨立  一萬二千峯
 
 
宋時烈의 〈金剛山〉의 네 수 가운데 첫 수이다. 千  절벽 위에서 바윗돌을 굴리는 기상이 느껴진다. 皆骨이라 산도 희고 구름도 희다. 시인은 `不辨容`의 상태에서 `雲歸`로 迷妄을 걷어냄으로써 일만 이천 멧부리의 特立獨行을 돌올하게 펼쳐 보인 것이다. 군자의 삶도 마땅히 이러해야 하리라. 우리 삶을 에워싸고 있는 자질구레한 집착과 욕망, 이런 것들을 활짝 걷어 젖힐 때 비로소 본체의 길은 환히 열리게 되리라. 이때 산은 단순히 他者로서 존재하는 자연물의 일부가 아니라, 인간 삶의 이치를 일깨우는 거울이 된다. 
 
 
옛길은 적막해라 솔 뿌리 얽혀                 
낮은 하늘 북두.견우 손뻗으면 닿겠네.           
뜬 구름 흐르는 물, 절 찾은 나그네              
붉은 잎 푸른 이끼, 스님은 문을 닫고.           
가을 바람 싸늘히 지는 해 불어가자             
산 달이 떠오더니 잔나비 울음 우네.             
기이쿠나. 흰 눈썹의 늙은 중이여                
긴 세월 시끄러운 세상 꿈 꾼 일 없네.           
古逕寂寞영松根  天近斗牛聯可문 
浮雲流水客到寺  紅葉蒼苔僧閉門
秋風微凉吹落日  山月漸白啼淸猿
奇哉호眉一老衲  長年不夢人間喧
 
 
鄭知常의 〈邊山蘇來寺〉이다. 솔뿌리를 밟으며 태고 속으로 나그네는 걸어 들어가고, 청청한 하늘은 머리를 누를듯 낮게 내려와 반짝반짝 별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다. 사는 일 하릴 없어 절을 찾은 나그네를 맞이 한 것은 발목을 덮는 낙엽과 푸른 이끼 낀 빗장 질린 山門이다. 아웅다웅 토닥대며 살아온 삶이 굳게 닫힌 山門 앞에서 무연하다.
 
 
세상 일 어지럽다 옳다 그르다   
십년 세월 붉은 먼지 옷을 더럽혔도다.  
꽃 지고 새 우는 봄 바람 속에   
어디메 청산에서 사립 닫고 계신고.  
十年紅塵汚人衣  世事紛紛是與非
落花啼鳥春風裏  何處靑山獨掩扉
 
 
고려 말 金齊顔의 〈寄無說師〉란 작품이다.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다투는 시비의 싸움으로 세상은 언제나 떠들썩 조용할 날이 없다. 홍진 세월 십년에 남은 것은 더럽혀진 옷뿐이구나. 언제나 보고픈 無說 스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 어느 곳 山寺에서 문 닫고 禪定三昧에 잠겨 계실까.
 
 
밭갈며 세월을 그리 보내고   
약캐다 청춘은 지나가리라.   
산 있고 흐르는 물이 있는 곳   
영화도 치욕도 없는 몸일세.   
耕田消白日  採藥過靑春
有山有水處  無榮無辱身
 
 
申淑의 〈棄官歸鄕〉이다. 고려 의종이 환관에게 벼슬을 내리자, 다들 침묵 하는 중에 그 혼자 들어가 그 불가함을 간하였다. 왕이 노하여 그의 벼슬을 빼앗자, 미련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며 지은 시다. 언제나 푸른 산이 있고, 변함 없이 흘러가는 시내가 있다. 그 속에서 밭갈고 약초캐며 남은 세월을 보내리라. 그곳에는 부귀영화를 향한 헛된 꿈도 없고, 헛된 꿈에 팔려 욕을 보는 치욕도 없을테니까. 그렇게 돌아온 산에서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아침해 희미하다 흐렸다간 밝아지고  
하늘 끝 누워 보니 조각 구름 피어나네.  
어느새 구름 모여 비 되어 뿌리더니  
골짝마다 무너지듯 여울소리 뿐이로다.   
朝日微茫 復明  臥看天末片雲生
須臾遍合飜成雨  萬壑崩湍共一聲 
 
 
成守琛의 〈山居雜영〉이다. 아침해가 희부옇기에 흐린 날인줄 알았다. 이따금 햇살이 비치니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이부자리에 그대로 누워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 저편에서 조각구름이 피어난다. 저 구름이 해를 가려 밝았다 어두웠다 한 것이다. 그런가보다 하고 달콤한 아침 잠을 더 즐기려는데, 어느새 조각구름은 먹장구름으로 변해 온 산에 자욱하게 비를 쏟아 붓는다. 갑작스런 비에 놀라 삽시간에 골짝마다 콸콸콸콸 여울물 쏟아지는 소리 뿐이다. 귀가 멍해진다. 沛然히 쏟아지는 빗소리 물소리가 티끌 삶의 흔적을 자취 없이 씻어버린다. 통쾌하다.
 
 
초록 나무 그늘 아래 꾀꼬리 울제  
푸른 산 그림자 속 띠로 엮은 집.  
이끼 낀 길 한가히 거니노라면   
비갠 뒤 그윽한 향 풀꽃 위에 진동하네.  
綠樹陰中黃鳥節  靑山影裏白茅家
閒來獨步蒼苔逕  雨後微香動草花
 
 
崔奇男의 〈閒中〉이다. 꾀꼬리 우는 봄날 푸른 산 자락에 흰띠로 얽은 집이 한채 그림처럼 놓여 있다. 이끼 낀 길은 숲속으로 이어있고, 뒷짐 지고 거니는 한가로운 산보에 비갠 뒤라 싱그런 향기가 코 끝에 전해온다.
 
 
 
[정민교수의 한국한문학 홈페이지 글을 나누어서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