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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풍경]

지리산 둘레길 3구간을 걷다

 

        [지리산 둘레길 3구간-등구재 오름길]

 

오랜 시간동안 지리산의 골짜기와 산줄기의 산길을 찾아온 나에게 '지리산 둘레길'이라는 이름은 매우 낯설게 다가왔다. 하지만 지리산이라는 공간이 주는 이미지, 우리 옛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목도했을 線으로서의 이미지, 혹은 그 이름에서 풍겨오는 다소 목가적이거나 ‘느림’이라는 느낌으로 인해 이 길의 개통부터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2008년 4월 실상사의 도법스님 주재 하에 처음 지리산길이 열리던 행사에 다녀왔던 나는 조금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개통되던 시범구간이라는 길도 드문드문 숲길로 나있을 뿐, 딱딱한 회색 콘크리트 포장길이 길게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길은 우리 옛사람들의 삶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복원한 것인지 인위적으로 산속으로 길을 낸 것인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던 것이다.

 

 

 

 


물론 자연스럽게 논길이나 숲길로 나있는 길은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었음도 사실이지만, 몇 년이 지나서도 그 길(지리산 둘레길 3구간)을 걷는 내내 그러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고, 안타까운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인위적인 길을 내기 위해 파헤쳐졌을 숲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 대하여는 앞으로 더욱 관심을 가지고 개선해야할 것으로 생각된다. 길은 외길로만 나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지리산 둘레길'이 전국적인 답사 명소가 되어버렸다. 얼마 전(10월 4일 월요일), 남원 운봉읍의 서천리 돌장승 앞에서 방송대학교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라는 강의 프로그램을 촬영하고 있는데, 일련의 아주머니들이 차에서 내리더니 나에게 다가와서 묻는 말이 이러했다.


'저 선생님, 이리도 가면 '이승기 길'이 맞나요?'


말하자면 지리산 둘레길 2코스가 모 예능프로에서 다녀간 탤런트 이승기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그때 나는 ’내가 지리산에 대해 외면하고 있는 것이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떠올랐을 정도로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은 지금 지리산 둘레길 인근 마을 곳곳의 풍경을 다르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우리 삶을 너무도 쉽게 변화시키는 TV의 위력을 잘 실감할 수 있다 하겠다. 운봉-인월-함양을 잇는 도로의 갓길에는 차량들이 줄을 서있고, 한적하던 지리산 산골마을 인월에서는 주말이면 교통순경이 나와 교통정리를 하고 있을 정도이다. 또 쉴 새 없이 달리고 있는 택시들의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이제 어쩌면 지리산의 능선과 골짜기를 걷는 사람들보다 둘레길을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10년 ‘지리산 산길따라’ 가을 축제에서는 그러한 답사 패턴의 변화를 느끼고 ‘지리산 둘레길’이 지니고 있는 무언가를 느끼고 찾아보고자 길을 걷기로 하였다. 코스는 전북 남원 인월에서 시작하여 경남 함양 금계마을에서 끝나는 3구간 중, 남원 산내면 매동마을에서 시작하여 중황마을-등구재-창원마을-금계마을 길을 택하였다. 이른바 ‘강호동 길‘이다.

 

 


매동마을 뒤의 숲길을 한참 걸으면 공간이 활짝 열리며 중황마을 뒤를 지나는데, 이때 걷는 방향 오른쪽에 보이는 두루뭉술한 봉우리가 백운산이고, 그 왼쪽 아래로 이어지는 잘록이가 등구재인데, 왼쪽으로 오르며 이어지는 산줄기는 고스락인 삼봉산으로 이어진다. 이 산줄기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를 경계 짓는데, 삼봉산과 백운산은 가히 지리산 전망대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주능선이 잘 조망되는 곳이다.


등구재를 지나 창원마을로 돌아 나오면 남쪽으로 공간이 환하게 열리며 지리산 동부자락의 모습을 잘 조망할 수 있다. 왼쪽 산사면에 비쭉 튀어나와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함양독바위(노장대)의 모습이 매우 가깝고, 두류봉과 두류능선, 하봉과 초암능선, 천왕봉과 주능선과 골짜기의 모습도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답사한 날은 視界가 하루 종일 개스에 닫혀있어 선명한 주능선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희미한 실루엣으로 다가오는 산자락의 모습은 오히려 더욱 나의 가슴을 요동치게 하였다. 아마 이 코스의 가장 큰 덕목은 금계 마을 직전 탁 트인 공간에서 손에 잡힐 듯한 지리산 동부자락을 조망할 수 있는 점이라 할 수 있겠다.

 

        [왼쪽 산사면 튀어나온 부분이 함양독바위이다]

        [중앙 왼쪽 짙은 실루엣이 두류봉과 두류능선이고, 그 뒤가 하봉과 초암능선이다. 주능선은 맨 뒤 희미하게 보인다]


당초 예상했던 것처럼 산길과 숲길로서의 둘레길 3구간에서의 아쉬움은 적지 않다. 특히 창원마을을 둘러내려 오는 길은 ‘둘레길‘의 이미지에 맞지 않을뿐더러 졸속적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많은 국비 예산을 붓고 있는 둘레길 조성에 신중을 기하여야 함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삶의 길‘에 ’생태적 길‘로서의 의미를 더해야만 둘레길 조성으로 가질 수 있는 ’길‘의 가치가 한층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구간의 운행시간은 느긋한 걸음으로 점심식사시간 포함 약 6시간 걸렸으며, 거리는 11.4km이다


두류/조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