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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文化 이야기

문화재 이야기(3)불갑사의 사금파리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 불갑사의 사금파리

전남 영광에 있는 불갑사(佛甲寺)는 가을이면 진분홍에 가까운 붉은 꽃이 질펀하게 언덕을 덮는 꽃무릇으로 유명한 절입니다.
 

마라난타가 중국 동진에서 백제로 건너와 처음 절을 짓고 포교를 시작한 곳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하지요.

 

나아가 불갑사 스님들은 인도 승려인 마라난타가 중국을 단순히 경유했을 뿐 인도 불교를 직접 백제에 전했다고 설명합니다.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백제 침류왕 원년 384년의 일이니 140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그런데 불갑사에서 이렇듯 오랜 역사의 흔적을 실제로 찾아보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임진왜란(1592∼1598) 때 완전히 불타 버렸기 때문입니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해 일광당, 만세루 등 아름다운 건물들도 모두 이후 새로 지은 것입니다.

 

가장 오래된 유적은 각진대사 자운탑입니다. 각진대사는 고려 충정왕과 공민왕의 왕사(王師)였다고 합니다.1355년에 세운 탑으로 전해지는데, 이 해에 입적한 만큼 실제 건립은 좀 더 뒤의 일이었을 가능성이 크겠지요. 그런데 기록이 아닌 유물로 불갑사의 역사를 각진대사 자운탑보다 더욱 끌어올릴 수 있는 흔적이 아직도 적지않게 남아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금파리가 그렇습니다. 쉽게 말해 옛날 이 절에서 쓰던 그릇의 깨진 조각들이지요.

 

불갑사를 찾았을 때는 마침 만세루 아래에서 터를 고르고 있었습니다. 흙더미 틈에서 막사발 조각과 함께 분청사기 사금파리도 쉽게 눈에 띄더군요. 작은 꽃무늬를 촘촘히 찍은 인화문과 이보다 조금 큰 국화문이었습니다. 이런 인화문 분청 조각 몇개를 줍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요. 미술사학자인 강경숙 충북대 교수의 편년에 따르면 인화문 분청사기는 1390년쯤 만들기 시작해 1540년쯤 막을 내렸습니다. 짙은 색깔의 무늬없는 청자 조각도 찾았습니다. 청자는 14세기 후반 이후로는 내려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각진대사 자운탑보다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일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사금파리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청자나 분청사기가 흔했다면 당시 사세(寺勢)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이쯤되면 한 때 ‘불지종가(佛之宗家)’라고 불리웠다는 불갑사쪽 기록도 조금의 과장은 있을지언정 허튼 얘기일 수 없습니다.

 

물론 아무리 오래된 고려청자 사금파리라도 10세기 이전의 불갑사를 설명해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토기나 기와 전문가라면 작은 조각에서도 통일신라, 나아가 백제 시대의 흔적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발뿌리에 차이는 작은 사금파리나 기와조각에도 애정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기사일자 : 2007-01-25    25 면

 

[서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