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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한양의 中人들(44)역관의 어려움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4) 역관의 어려움, 외국어 교육과 험난한 뱃길 외국어를 배우려면 해당 외국에 유학하여 배우거나, 국내에서 배우더라도 해당 외국인에게 배우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쇄국정책을 펼쳤던 조선시대에는 학생을 외국에 보내지도 않았고, 외국인 교사를 초빙하지..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43)조선 최고 부자 변승업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3) 조선 최고의 부자 변승업과 그 후손 박학다식하기로 이름난 육당 최남선은 조선 최고의 갑부를 변승업이라고 했다. 변승업(卞承業·1623∼1709)은 일본어 역관인데,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중개무역을 통해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 그는 연암 박지원의 소설 ‘..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41)마마 전문치료 두의 유상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1) 마마 전문치료 두의(痘醫) 유상 조선시대에 가장 무서운 병 가운데 하나가 마마였다. 마마는 누구나 평생 한번은 걸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병인데, 심하면 죽었고, 가볍게 나아도 얼굴에 흉터가 생겼다. 심하게 얽으면 곰보라고 했는데, 조선시대 초상화를 살펴 ..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40)피재길, 고약장수에서 종6품으로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0) 고약장수에서 종6품 오른 피재길 홍천 피씨(皮氏)는 전형적인 중인 집안이다. 대부분의 중인은 문과를 하던 사대부 집안에서 분파되었는데, 피씨는 문과 급제자가 없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1차 시험이었던 생원 진사시의 합격자 명부 ‘사마방목’에도 피씨는 ..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37)조희룡의 '호산외기'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7) 조희룡이 지은 전기집 ‘호산외기’ 사마천은 한 시대의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으로 본기(本紀)·표(表)·서(書)·세가(世家)·열전(列傳)의 다섯 가지 체제를 채택했다. 본기는 제왕들의 이야기이고, 표는 도표 형식으로 사건을 기록한 것이며, 서는 제도를 서..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36)中人文學②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6) 후세에 전해진 중인들의 문학 서당 훈장인 최경흠을 중심으로 모였던 직하시사(稷下詩社)는 자신들의 창작활동보다도 중인 선배들의 생애와 업적을 정리한 공로로 더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한 개인의 시집을 출판하려면 적어도 몇백 편 정도의 작품 분량이 있어..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35)문학동인 벽오사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5) 조희룡이 만든 중인 문학동인 ‘벽오사’ 조희룡(1789∼1866)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많은 중인 친구들과 사귀었다. 그런 교우관계를 통해서 보고 들은 선배 중인 42명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 56세에 저술한 ‘호산외기(壺山外記)’인데,3년 뒤에 다시 새로운 ..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34)화가 조희룡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4) 직업적 화가이기를 거부한 화가 조희룡 신분에 대해 개방적이었던 추사 김정희의 제자는 여러 갈래였다.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사대부들도 많았지만 중인 쪽에 특별히 많았다. 이상적 같은 역관 제자는 중국을 여러 차례 오가면서 새로운 문물을 전해 주었으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