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선후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07)안평대군의 집과 별장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7)안평대군의 집과 별장 ●세종이 당호를 지어준 비해당 안평대군(安平大君·1418∼1453)이 혼인하면서 경복궁에서 살림을 내어 나간 뒤에, 인왕산에 저택을 짓기 시작했다.1442년 6월 어느날 경복궁에 들어가자 세종이 물었다. “네 당호(堂號)가 무엇이냐?” 안평대..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06)인왕산이 중인의 터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6) 인왕산이 중인 터전 위항(委巷)은 꼬불꼬불한 거리나 골목,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를 가리킨다. 양반들은 넓은 집에 살았으므로, 좁은 골목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인 이하였다. 한양을 남촌과 북촌으로 나누면 그 중간지대인 청계천 일대가 위항이었..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05)직업과 그 한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5) 직업과 그 한계 그동안 한양 인왕산 일대에서 활동했던 중인들의 이야기를 몇차례 소개했다. 그 가운데는 관청의 아전들이 많았지만, 역관이나 의원들도 있었고, 서당 훈장도 있었으며,인쇄전문가도 있었다. 조선시대 신지식인 이라고 평가되는 중인은 과연 어.. 더보기
한양의 중인들(01)추사 김정희, 중인들과 만나다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 추사 김정희, 중인들과 만나다 시곗바늘을 조선 후기,200여년 전으로 돌려보면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오늘에 새롭게 접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전문기술자 신분인 중인(中人), 즉 위항인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위항(委巷)은 좁고 지저분한 거리, 현재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