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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병자호란 다시 읽기(82)남한산성의 스산한 연말 [병자호란 다시 읽기] (82) 남한산성의 스산한 연말 2008-07-30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포위된 이후 남한산성 사람들은 바깥 소식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했다. 근왕병이 근처까지 와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거나 패하여 물러갔다는 소식이 잇따라 들려오면서 산성의.. 더보기
병자호란 다시 읽기(81)근왕병이 패하다② [병자호란 다시 읽기] (81) 근왕병이 패하다 Ⅱ 2008-07-23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당시 근왕병들이 처해 있던 열악한 상황을 고려하면, 청군의 포위망을 뚫고 남한산성을 구원하는 것은 애초부터 여의치 않은 일이었다. 우선 지방의 감사나 지휘관들이 병력을 모으고.. 더보기
병자호란 이야기<80>근왕병이 패하다① [병자호란 다시 읽기]&lt;80&gt; 근왕병이 패하다 Ⅰ 팔도 근왕병 속속 기치 들지만 중과부적에 한숨만… 2008-07-16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몇 차례 소소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고, 날씨가 추운 .. 더보기
병자호란 이야기(79)남한산성의 나날들③ [병자호란 다시 읽기] (79) 남한산성의 나날들 Ⅲ 왕세자를 보내지 않으면 화친은 꿈도 꾸지 말라는 청군 지휘부의 요구가 있은 직후 성안의 분위기는 복잡했다. 여전히 화친을 시도해야 한다는 부류와 화친은 이미 물 건너갔으니 최후의 결전을 벌여야 한다는 부류로 나뉘었다. 결단은 쉽지 않았다.1636.. 더보기
병자호란 다시 읽기(78)남한산성의 나날들② [병자호란 다시 읽기] (78) 남한산성의 나날들 Ⅱ 남한산성을 공략하려는 청군 지휘부의 계책은 치밀했다. 그들은 성 주변에 참호를 파고 목책을 설치했다. 이미 1631년 홍타이지가 명의 대릉하성(大凌河城)을 공략할 때 사용했던 전술이었다. 성을 외부로부터 완전히 격리시켜 그야말로 고사(枯死)시키.. 더보기
병자호란 다시 읽기(77)남한산성의 나날들① [병자호란 다시 읽기] (77) 남한산성의 나날들 Ⅰ 인조의 가짜 아우 인질로 보냈다가 더욱 궁지에… 인조는 결국 강화도로 가는 것을 포기했다. 건강이 여의치 않은데다 주요 길목을 청군이 모두 봉쇄했기 때문이다. 무리하게 강화도 행을 시도하다가 청군에게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었.. 더보기
비뚜로 보는 문화제<36>남한산성 수어장대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6) 남한산성 수어장대 병자호란때 총지휘부… 치욕 잊지말자 ‘無忘樓’ 편액 병자호란(1636∼1637년)의 역사적 현장인 남한산성을 찾는 사람들은 성남쪽에서 남문으로 들어서든, 광주쪽에서 동문으로 들어서든 본격적으로 산성을 일주할 생각이 아니라면 일.. 더보기
병자호란 다시읽기(19)심하전역과 인조반정① [병자호란 다시 읽기] (19) 심하전역과 인조반정 Ⅰ 광해군은 노회한 명과 사나운 후금 사이의 대결 속으로 말려들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그가 정보를 수집하고, 기미책을 강구하며, 자강 능력을 배양하려 애썼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정세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비록 외교적 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