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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길/산행.여행기 모음

[비망록]오지에 갇혔던 2주일...


 

[강원도 홍천군 내면 율전리 내린천변에 있는 살둔산장.]

 

이 곳을 들러시는 님들 주말 잘 보내셨는지요?
어쩌다보니 게시판에 글 남긴 지가 꽤 오래되었습니다.

지리종주,태극종주, 아니면 산자락 어디라도 우리가 좋아하고 갈 곳이
있다는 건 진정 축복입니다. 모두 즐거운 산행 하셨겠지요...

저는 최근 2주 동안 무슨 마음의 병이라도 들은 냥, 끙끙대며 꼼짝을
하지않고 있었습니다만, 주말에는 2주 연속해서 강원도 인제와 홍천이
맞닿아 있는 산자락을 다녀왔습니다.

결론을 미리 말씀 드리자면 그 마음의 병인 냥 했던 것은 저의 게으름과
자만심 때문이었는데, 그제 홀로 약 12시간 비맞으며 오지의 산자락을
다녀왔더니 조금은 나아지는 듯 합니다.

지 지난 주 아우 만강이와 함께한 방태산 산행을 시작으로, 차량으로 혹은
발길로 올해 여름 답사대상지로 마음에 두고있던 '삼둔사가리' 답사를
시작했습니다.

모두 잘 아시지요? '삼둔사가리'...
정감록에서 십승지지, 즉 3가지 禍를 면하며 살아갈 만한 곳이라는 곳
이라고 알려진 살둔(생둔),월둔,달둔의 삼둔과 아침가리,적가리, 연가리,
명지거리의 4가리를 말하는데,  이들 전체를 ‘삼둔사가리’라고 하지요.

이 지역들은 오대산,방태산,구룡덕봉 등, 강원도 인제와 홍천에 산재해

있는 오지의 땅들인데, 산줄기 개념으로 묶어서 이야기하기는 애매합니다만,

물줄기 개념으로보면 명확해집니다.

한강->북한강->소양강->내린천...
바로 내린천의 상류를 이루는 골짜기 깊숙한 곳이거나, 내린천 냇가에 있는
오지의 곳들입니다.

첫 걸음인 방태산 산행은 적가리골 계곡 바로 옆에 있는 야영장에서 야영을

한 후, 주봉인 주억봉을 올라 구룡덕봉을 거쳐 하산하는 코스로 잘 다녀

왔습니다.

방태산과 구룡덕봉을 잇는 푸근한 능선과 육산의 봉우리들은 너무도 유순
해서 강원도의 산답지않고 오히려 지리산을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나더군요.

그리고 4가리중의 한 곳으로 두 봉우리 사이에 들어앉아있는 적가리골...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마치 짜맞춘 듯 계곡을 채우고 있는 많은 반석과 그
위를 타고 내려오는 폭포와 편안한 물길, 다양한 수종, 이 곳만을 좋아하는
매니아들이 있다는 사실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등산로 주변에는 곰취가 발에 밟힐 정도로 많습니다. 아우는 나름대로
귀하게 여기는 곰취가 발에 밟힐 까 걱정이 되는 모양입니다. 풀꽃과 나물
들이 엄청나게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습니다.

비오고, 개스 자욱한 구룡덕봉에서 만난 두 아저씨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이럽니다.

"곰취요? 여기서는 배추밭이지요.."
이 산엔 곰취가 그만큼 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점심시간 포함한 6시간 정도의 산행은 좋았고 잘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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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찜찜한 마음의 병의 원인이 된 것은 만강이와 만나기 전에 들런
'살둔산장'과 그 뒷날 자료를 정리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다 만난 소설
‘아라리 난장’ 때문이었습니다.

 

인제군 상남에서 미산계곡을 따라 난 도로를 거슬러 가다보면 홍천군 내면

이정표와 다리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계곡 옆에 자리한 2층 건물이 보입니다.

누각처럼 생긴 2층만 보이는데, 조금 떨어져있긴해도 특이한 모습이 눈에

금방 들어옵니다. 바로 이 건물이 살둔산장입니다.

 


 

이층구조 귀틀집으로 유명한 내린천 가의 살둔마을 '살둔산장'에는 전혀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산장 입구 오이밭에서 일을 하고있는 분들이 몇몇
계셨지만, 나중에 산장에 직접 전화로 물어볼 요량으로 그 분들께는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되돌아나와버렸습니다. 아마도 힐끔힐끔 쳐다보는
모습에서 나그네를 경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 말 걸기가 쉽지않았던
모양입니다. 참 나.... 결국 그게 화근이 되고 맙니다.

 




그 날 저녁, 아우와 함께 살둔산장에서 하루 묵고갈 수 있을까하고 계속
전화를 해보지만 받지않습니다. 결국 저희들은 예정대로 방태산휴양림으로
들어가 야영을 하였지만, 저 스스로 생각해봐도 나그네로서의 자질이 너무나
모자랍니다. 그러니 받아들이는 생각의 폭이 좁을 수 밖에요…

귀가한 후, 일주일 동안 내내 산장으로 전화를 해도 받지않아 얼마나 답답
하던지요. 당초 들어갔을 때, ‘누구에게라도 물어보았으면 될걸’하는 때늦은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저의 게으름을 반성했음은 물론입니다.
결국 다음 주, 저는 살둔산장에 다시 발을 들여놓게됩니다.

오지답사를 즐기는 사람들과 산꾼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던 살둔산장은
송사에 휘말려 지금까지 이 곳을 지키고 있던 분들이 떠나야 할 상황이
되어버렸답니다.. 아니 그저께 빈집임을 확인했습니다.

늙고 새끼를 친, 야윌 대로 야윈 고양이(아마 이름이 '연우'라는 고양이일
겁니다)만이 깡마른 채,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있고,
불과 일주일 전만해도 담 한쪽에 포개져 이 집의 추억과 역사를 말해주던
‘장작화로’ 남포등(램프)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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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둔과 달둔도 첫번 째 답사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다 둘러볼 수
있었을 터인데 입구만 대충 들여다보고 나와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하게
삼둔사가리 자료를 정리하다가 만난 소설가 김주영 선생의 ‘아라리 난장’에서
생깁니다.

소설 말미, 주인공들이 고냉지채소밭을 조성해 공동체생활을하며 살아갈
정착지로 놀랍게도 삼둔사가리의 ‘월둔’으로 설정을 해놓았습니다.
참, 그런 걸 보면 김주영 선생 대단한 분입니다.

구룡덕봉, 삼둔사가리, 월둔, 명지가리 등등, 소설을 쓰기 위해서 답사했을
그 산자락의 묘사가 너무나 정확하고 또 실감나게 그려져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물흐르듯 거침없는 선생의 글솜씨를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공간에 대한 그 분의 철저하고도 치열한 취재모습이
떠올려졌기 때문이지요.

아무튼 ‘아리랑 난장’, 그 글과의 만남은 저를 가만 놓아두지않았습니다.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잘 모르면 부지런하기라도해야지…’
이렇듯 제 그림자는 저 자신에게 비아냥거리며 나무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 차량으로 들렀던 곳들은 모두 다시 다녀와야만 했습니다.
토요일 조경동(朝耕洞: 아침가리)계곡 입구을 들어갔다 나왔고, 내친김에 진동
계곡을 따라 설피밭마을까지 다녀왔습니다. 쇠나드리 지나서 조침령 터널공사가
한창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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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저녁 홍천 구룡령 아래(오대산 도로가 연결되는 명개3거리 인근) 삼봉
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갔더니 산막이고 야영데크고 다 차버려서 입장을 할 수가
없답니다. 비박할테니 들어가게 해달라고 버텼더니 한참을 쳐다보다 들여보내
주더군요. 못마땅한 눈초리였지만, 거의 시비조로 말을 받는 저의 모습이 심상
찮았던(?) 모양입니다.

그 곳을 찾은 이유는 가칠봉에 오른 뒤, 아침가리골 상류로 내려서서 명지거리,
월둔고개를 둘러보려함입니다.

일요일 아침, 식사와 배낭패킹을 마친 후, 7시쯤 약수터 뒤쪽의 산길을 출발,
휴양림 북쪽 가칠봉을 올랐습니다. 가파르긴해도 2시간도 채 걸리지않는 짧은
코스입니다. 정상에서 웃자란 풀로 덮여있는 산길(아침가리골 방향)을 보고
하산의 유혹과 갈등을 많이 느꼈습니다만, 결국 긴바지로 갈아입고 계획한대로
아침가리골(안내판:방태산방향)로 내려섭니다. 월둔고개에서는 다시 응복산을
거쳐 휴양림으로 되돌아 나오는 코스로 길을 잡았습니다.

참고로 정상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대간길 구룡령으로 이어집니다.

아침가리골로 내려서는 지능선과 그 뒤에 만나는 지계곡은 급경사가 많고,
이끼가 낀 바위가 많은 인적이 무척 드문 숲이었습니다. 계곡을 따라 내려
설 때는 미끄럽고 움직이는 바위가 많아 무척 긴장을 해야만 했습니다.

마침내 조용하게 흐르는 아침가리골과 만나는 합수점에 도착하니 물봉선
군락이 마치 마중을 나온 듯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때의 기분, 모두 느껴
지시지요…맞은 편 비탈길을 오르자 마침내 임도가 나옵니다.

순간, 드드드…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굉음과 함께 질주하는 오프로드 차량들이 인제 방동쪽에서 떼지어 올라오고
있는 게 아닙니까.. 비좁은 길에는 비킬 공간도 마땅치 않습니다.

이렇게해서 나의 마음과 발길을 끌던 그 평화로운 아침가리골은 어이없게도
만나자마자 잃어버리고 맙니다. 임도를 따라 월둔고개로 오르면서 몇 번이나
길을 비켜야만 했으니 그 참담함이란…

구룡덕봉 정상으로, 56번 국도상의 월둔길, 또 인제 방동리로 이어지는 임도,
이렇게 로타리처럼 3거리를 이루는 월둔고개 역시, 그 곳을 보자마자 선생의
그 실감나는 묘사에 그려지던 소설 속의 목가적인 정경들이 깡그리 사라져
버리고맙니다.

구령덕봉 정상까지 이어지는 길을 휘젓고 다니는 군복을 입고 고글을 낀
Rider들의 세상이었거든요.

월둔고개에서 다시 응복산 방향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큰 비를 만나 흠뻑 젖게
됩니다. 천둥과 번개가 조금 불안하게 느껴졌지만 다행히 하산까지 약 12시간
정도 걸려 산행을 마치게 됩니다. 사진을 많이 찍었으니 그 시간도 만만찮겠지요.

차안에서 잠시 졸음 해결한다고 눈 붙인게 무려 4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어제 새벽, 아니 아침에 도착하여 몸은 무척이나 피로했습니다만, 마음은
모처럼 편안해졌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스스로를 사랑하려면 스스로에게 엄격해야한다’는 두류의 개똥철학을 새롭게
마음에 새기며 ‘삼둔사가리’에 갇혔던 2주간의 행보였습니다.

비록 Rider와의 만남으로 일그러지긴했지만. 그렇게 나의 마음과 발길을 끌던
곳은 지리산 이후로 처음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적가리골과 조경동계곡, 품이 넉넉한 방태산은 늘 마음에 두어야 할
곳으로 정했습니다.

님들,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 맞이하십시오.



두류/조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