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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길/산행.여행기 모음

[비망록]오, 가련한 나의 인생아!-대야산(경북 문경)

 

지산님들 고르지 못한 날씨에 잘 지내고 계시나요?

 

저는 지난 주말,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군에 걸쳐있는 백두대간 상의 봉우리인 대야산을 다녀왔습니다.

 

당초 대야산과, 인근의 도장산 두 군데를 다녀올 계획이었습니다만, 함께 가려던 남카크 아우의 사정으로 일요일 산행을 대야산으로 변경하고 토요일은 고참되자마자 군대생활이 더욱 힘들어졌지모를(?) 아들아이 면회를 다녀왔습니다. 근무지가 대전이니 마음먹으면 갈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

 

병장 계급장과 녹색 견장을 어깨에 단 아이는 ‘요즘 군대생활 못해먹겠어요.라며 인상을 찌푸립니다.  이 따스기, 까부ㄹ고 있어. ^^ 최근 발생한 사고로 모두의 마음이 편치않다고 합니다. 고참은 입다물고 졸병은 눈치보고...

 

반나절 같이 있으면서, 제 엄마의 특명대로 사진도 찍고, 냉면 한그릇씩 먹고는 부대에 데려다 주고  발길을 돌립니다.




[나와 아들 입니다. 대전 수운제 앞에서]

 

가까이있는 만강이 얼굴이라도 보고갈까 전화를 해봅니다만 녀석이 요즈음 일 때문에 이만저만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닌 듯합니다.

 

이제, 오늘 저녁의 목적지로 향합니다. 갈 곳은 경북 상주 화북면 상오리 쉰섬마을, 우리 지산가족이기도 한 저의 친구 원완주/이남근이 인턴농부라며 귀농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곳입니다. 일요일 아침에 만나기로했던 남카크도 저녁에 합류를 하기로 연락이 닿습니다. (희망님도 같이 오시라고 했었는데..)

 

대전에서 상주가는 길은 대청호를 빙 돌아 충북 회남-회북에 이르고, 25번 국도로 보은-경북 상주의 화서면으로 이어지는 길로 방향을 잡습니다. 이리로 가다보면 백두대간상의 고개인 화령재를 넘어가게 되는데, 말하자면 속리산 구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상주에서 남카크 아우를 만나 쉰섬마을로 향합니다. 하루 농사일을 마치고 고단한 몸을 쉬어야 할 친구 내외에게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싶어 늦은 시간이 조금은 부담스럽습니다. 물론 친구는 괜찮다고 했지만

[Canon] Canon EOS 350D DIGITAL
[대청호. 대청댐 바로 아래]

[Canon] Canon EOS 350D DIGITAL
[충북 보은 탄부면 임한리의 솔밭공원과 논]

 

쉰섬마을은 속리산의 동쪽자락 대부분을 차지하고있는 상주 화북면 상오리의 마을로 조가 다섯 섬 생산되는 마을이라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밤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에 친구집으로 들어 섭니다.

 

오랜만의 반가운 만남, 친구 처까지 함께 마당에 앉아 늦은 밤까지 무더운 여름밤을 함께 보냅니다. 내일 비오면 쉬면 된다고 친구내외는 새벽 2시에서야 자리를 파합니다. 농사일을 하면서 느꼈던 몇몇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친구가 인턴농부생활을 어떻게 마감할 지 조금은 방향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친구도 모르는 사이에 할머니들에게서 벌뜸양반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더라는 시골생활의 따뜻한 이야기도 듣기에 참 좋습니다.

 

논 다섯 마지기, 고추 600평, 거기에다 콩농사까지모두 유기농으로 짓는 이 전답들이 십여키로 떨어진 곳에 흩어져있다니 친구 내외의 고단한 영농생활이 짐작이 갑니다. 모두 빌린 땅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평안한 두 사람의 모습에서  나의 마음도 천천히 내려놓습니다.

 

대기업의 고위직에 있으면서 늘 동경하던 생명의 원천, 농사일을 하려 귀농학교를 내외가 함께 졸업하고,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는 이 먼 곳으로 들어와 사는 성실하고도 착한 친구, 사모님이란 다른 이름을 포기하고 찬찬하게 농촌생활을 받아들이는 더 착한 친구의 아내, 부디 이 내외가 늘 건강하고 마음에 평화가 함께하길 기원해봅니다. 친구의 모범적인 귀농생활은 올해부터 후배 귀농자들에게 강의를 통해 전수된다고하니 그 진지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음날 아침은 창가에 들리는 낙숫물 소리에 놀라 잠을 깹니다. 아무래도 산행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그마한 마당의 꽃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으니 뜻밖에 날이 개입니다. 대야산으로 방향을 잡고 아우와 친구의 집을 나섭니다. 고추밭 일이라도 좀 거들어주지 못하는 마음에 저는 괜히 미안합니다.

 

작년에 없던 예쁜 화초들이 눈에 띄고, 튼실한 구조물로 마당 한구석을 지키고 있는 토마토 밭은 친구가 인턴농부의 이력이 꽤 높아졌음을 저 같은 사람도 한눈에 느낄 수 있습니다.

 

서로를 격려하며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눕니다. 수줍음 많은 친구의 처는 여전히  사진찍기를 거부합니다. 영락없는 순박한 시골아낙입니다. 아주머니, 아니, 제수씨, 모쪼록 건강하세요

[Canon] Canon EOS 350D DIGITAL
[인턴농부 원완주/이남근. 나의 중학교 동기생이다]


[Canon] Canon EOS 350D DIGITAL
[유기농으로 짓는 고추밭. 자그만치 600평. 노동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제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남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대야산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충북 괴산,경북 상주, 문경이 잇닿아 있는 이 부근에는 이름난 계곡과 봉우리들이 무척 많이 있습니다.

 

대야산은 백두대간 중에서도 아름다운 봉우리로 이름나있는 곳입니다만, '용추계곡'이라는 멋진 계곡이 있어 여름 산행지로도 아주 잘 알려진 곳입니다.

 

세상에 10시경에 도착한 대야산 주차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입니다. 전국의 안내 산악회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왔습니다.

[Canon] Canon EOS 350D DIGITAL
[대야산 주차장에서 농바위 이정표 오르는 길]


피아골 오름길, 정상 직전 급경사 길에서는 오르내리는 이들로 교행이 힘들어 체증이 심합니다. 이러다보니 막히는 길을 비켜가느라고 길 아닌 길을 디디다보면 조용히 누워있던 돌을 건드려 위험하게 낙석을 만들게 됩니다. 김해에서 온 안내산악회의 여성 한 분은 결국 낙석에 부상을 당하고 맙니다. 안전산행을 위한 마음의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곳입니다.



[Canon] Canon EOS 350D DIGITAL
[피아골 오름길. 대야산 정상 직전]

[Canon] Canon EOS 350D DIGITAL
[대야산 정상 인근 바위봉우리]
 


이미 예상하고 있던 장마비는 무던히도 잘 참고 있다가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뿌리기 시작합니다. 밀재를 돌아 월영대에 닿으면서부터는 비가 아예 퍼붓습니다. 머리를 탁 틔우듯 정신을 맑게해주는 이 시원한 빗줄기를 즐기는 일이란

 

산을 내려온 후, 대구로 내려가야 할 아우와는 교통이 편리한 점촌에서 헤어지기로합니다. 귀경하는 길은 이미 집중호우가 내려 도로가 엄청 막힌다는 방송을 듣습니다. 콩국수 한 그릇씩을 비우고 아우와 헤어진 후, 3번 국도로 방향을 잡습니다. 비내리는 날이라 저도 모르게 과속을 하게되는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피하고 천천히 편안란 마음으로 가기위해서입니다.

 

점촌에서 문경새재로 이어지는 3번 국도는 마치 고속도로같이 너르고 길이 좋습니다. 하지만 전용도로인냥 달려와 이화령 고개를 지날 즈음에 만난 터널요금소는 기분을 조금 상하게 합니다. 오래된 간선도로인 3번국도에 통행료라니요. 그래서인지 이 도로로 다니는 차가 거의 없었던 모양입니다.

 

아뭏든 수안보-충주-장호원을 거쳐 이천으로 가는 길은 빗속에 정속으로 주행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이어집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차가 물컹한 물체에 받힌 듯 바퀴가 멈칫하는 순간을 맞이할 때는 깜짝 놀라게 됩니다. 집중호우로 도로가에 고인물을 지나서인데 깜깜해서 전혀 보지못한 거지요.

 

그 뒤부터는 계속 1차선으로만 진행합니다. 전혀 막힘없이 2시간 30여분 걸려 경기 광주에서 갈마재를 넘어 성남으로 넘어갑니다. 이 길은 저가 있는 강남으로 가기가 수월합니다. 여전히 정체가 심하다는 영동선과 중부선 고속도 소식은 길눈 밝은 저의 마음을 뿌듯하게 해줍니다.

 

성남에 들어서니 오늘은 웬일인지 분당-청담대교로 이어지는 자동차전용도로가 생각납니다. 예전에는 보통 남한산성로로 빠져 갔었는데, 아마 빗길에 막히지않고 쭉 빠질 그 길이 편하게 느껴졌나봅니다.

 

하지만..이제부터 어이없는 일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침 고속도로 이정표가 나와 아무 생각없이 고속도로로 접어 듭니다. 그런데 100번 고속도, 구리로 가는 길입니다. 자동차전용도로를 고속도로 착각한 것이지요.

 

고속도 올라서자마자 요금을 내는데, 참말로 마음이 쓰립니다. 바로 송파쪽 I.C로 하산(?)을 해야하니 말입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내가 갔어야 할 길이 마치 약을 올리듯 나란히 달리고 있습니다.

 

허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램프를 빠져나와 2차선 죄회전을 기다리다 죄회전하자마자 오른쪽으로 가서 분당-수서간 도로로 올라야하는데, 일차선에 있던 나는 빗길에 몰려오는 차량 때문에 차선을 바꾸지 못하고 떼밀리듯 직진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길눈 밝은 저가 그리 고민할 이유는 없습니다. U턴해서 다시 돌아가면 되니까요. 다 아시겠지만 물론 저는 위반을 거의 하지않습니다.

 

예상대로 합법적인 유턴 장소 발견. 근데 뭔 신호는 그리 깁니까... 우쨋든 잘 돌아서서 아까 타려던 도로로 진입하려고 커다란 교차로로 서서히 접근합니다...

그런데!! 아니 이게 왠일입니까.??

 

비는 아랑곳하지않고 도로를 차단한 노란 제복들이 차를 세우고 있습니다. 허를 찌르는 음주단속이 마치 작전처럼 벌어지고있는 현장입니다. 순간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상주 1병 나누어 마시고, 하산해서 맥주 석잔,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찌게의 유혹에 넘어가 마신 소주 2잔

 

그 먼 길을 돌고돌아 간 곳이 마치 부나비가 불속으로 날아들 듯 그리로 가다니. 아~~나는 이렇게 가는가보다..내가 타향인 이 곳에서 어찌 이런 경우를.. 그 많은 길을 두고 일부러 요금내어가며 돌고돌아 간 길이 어찌 날 잡아잡수하며  범의 아가리로 들어갔을까그 짧은 순간에 참말로 생각도 많습니다.

 

그러고는 까닭모를 부아가 서서히 치밀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제 아들아이 또래의 젊은이는 운전자의 얼굴을 봐가며 차를 세우는 듯합니다. 저야 그런 일에 빠져나갈 수 없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언감생심

 

어쨌든, 불어주십시오!해서 불었습니다. 찰나였습니다. 삐 소리가 나더니 그냥 가라고 합니다.

 

점심 때에 정상주로 마신 반주는 흘린 땀으로 배설이 다되었고, 저녁으로 먹은 시원한 냉콩국수가 또 다시 희석을 시켰겠지요. 하지만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정말 십년감수 했습니다.  다행이다는 생각보다는 찜찜하니 기분이 좋지않습니다. 에이.. 이 문디

 

집중호우에 대비해 탄천주차장을 벗어나오는 차들로 엄청 길이 막힙니다. 더 굵어지는 빗줄기 속을 뚫고 숙소로 들어 온 나는, 땀과 비에 절은 옷가지들을 꺼내 지근지근 밟기 시작했습니다.

 

권경업 선배의 시 제목이 언듯 떠오릅니다.

! 가련한 나의 인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