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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관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49)고아 출신 曆官 김영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9) 떠돌이 고아 출신 역관 (曆官) 김영 2007-12-03 22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관상감은 천문과 지리를 비롯해 달력, 날씨, 시간 등을 맡아보는 관청인데, 영의정이 최고 책임자인 영사(領事)를 겸임할 정도로 중요한 관청이었지만 실..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47)譯官 양성 외국어학교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7) 개화기 역관 양성 외국어학교 2007-11-19 23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조선시대에 역관을 양성하던 사역원에서는 외국인 교수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몇 차례 조정에 건의했지만, 외국인 교수를 초청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46)역관 김득련이 본 신세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6) 역관 김득련이 본 신세계 고종이 1895년 8월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에 신변에 위협을 느끼자,1896년 2월에 이범진·이완용 등의 친러파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시켰다. 마침 러시아가 5월 26일에 거행될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사절단을 초청하자, 고종은 자..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45)세계일주 나선 역관들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5) 세계일주 나선 역관들 세계가 둥글다는 지식이 보편화되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서양에서는 세계일주가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세계일주에 나선 귀족들이 많았으며, 누가 더 빨리 세계일주를 하는지 내기를 걸기도 했다. 그런 소재로 1870년대에 쓴 ..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中人들(44)역관의 어려움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4) 역관의 어려움, 외국어 교육과 험난한 뱃길 외국어를 배우려면 해당 외국에 유학하여 배우거나, 국내에서 배우더라도 해당 외국인에게 배우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쇄국정책을 펼쳤던 조선시대에는 학생을 외국에 보내지도 않았고, 외국인 교사를 초빙하지..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中人들(27)譯官 오경석의 외교활동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7) 역관 오경석의 외교활동 조선시대 외교의 강령은 사대교린(事大交隣), 즉 ‘큰 나라 중국은 섬기고 이웃 나라 일본과는 사귄다.’는 것이다. 외교는 예조(禮曹)에서 관장했지만, 실제적인 사무는 사역원과 승문원(承文院)에서 맡았다. 중국이나 일본에 가서 통..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中人들(25)중국통 역관 이상적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5) 열두차례나 중국 오간 역관 이상적 양반 관료들은 고유 업무가 있었으므로 일생에 한번 사신으로 가기 어려웠다. 두 차례 이상 나갔던 문인은 별로 없다. 그러나 역관들은 외국에 나가 통역하는 게 업무였으므로, 능력만 인정되면 몇 번이라도 나갔다. 외국에 ..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中人들(18)한어 譯官 이언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8) 한어 역관 이언진의 활약상 일본에서 문인들에게 환대를 받고 돌아온 역관 이언진(李彦 ·1740∼1766)이 연암 박지원에게 자신이 지은 시를 보냈다.“오직 이 사람만은 나를 알아 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연암은 시를 가지고 온 사람에게 “이건 오농..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