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으로 가는 길/우리풀.꽃♧나무

타래난초와의 만남

 

 

 

*타래난초와의 만남


7월 중순, 장맛비가 쉴 새 없이 내리던 날들 가운데 낮게 내려앉은 하늘이 으름장만 놓으며 비를 비켜가게 한 적이 있었다. 며칠간 비 핑계를 대며 꼼짝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던 나는 무료함을 잊기 위해 마을의 낯선 숲으로 향했다. 이곳은 지리산 자락의 구례군 산동면 관산리 사포마을, 체육시설 예정지(골프장)로 지정된 산자락이다.


차량으로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마을회관 앞 개울가에 삼삼오오 앉아있던 어르신들의 눈길이 일제히 쏠린다. 불만 가득하고 경계심이 가득 차있음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개발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많아 갈등의 골이 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포장된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차를 세우고 너른 길을 따라 오르니 체육시설 예정지임과 분묘 이장을 권하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산길은 칡넝쿨의 세상이고, 개망초 무리의 왕성함은 놀랄 만하다. 드문드문 지고 있는 자귀나무와 산수국 꽃잎도 보인다. 며칠 째 내린 비에 비록 작은 계곡이지만 물 흐르는 소리는 매우 우렁차다. 모처럼 사냥에 나섰던 거미들이 나의 걸음에 수난을 당한다.


한 30분쯤 올랐을까, 묘를 이장한 너른 공간이 있어 휴식을 취하려고 배낭을 내려놓았다. 잡초만 무성한 무덤터를 둘러보던 내게 가녀리면서도 화려한 이 녀석이 하늘거리며 다가왔다. 타래난초를 만난 것이다. 몸통은 그저 평범한 우리 풀의 모습이다.

아뿔사! 잡초라니...


하늘이 더욱 낮아져 발길을 되돌렸다. 산길을 내려오는 내내 걸음이 조심스러웠다.

무심하게 내디딘 걸음에서 꽃과 한 생각을 만났다.

나의 어두운 렌즈에 들어온 타래난초의 모습이 안쓰럽지만 그 반가움을 숨길 수 없어 이렇게 꽃을 선보인다.


두류/조용섭 2009.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