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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보배, 버섯

[숲이 건강이다](19)숲의 보배 버섯

숲은 여러가지 생물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아름다운 공간이며, 숲 속의 모든 생물은 각각 일정한 역할을 담당한다. 숲의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는 나무를 비롯한 식물은 빛과 공기, 그리고 땅속의 물과 양분을 이용하여 유기물을 만드는 공장 역할을 한다. 식물을 먹이로 삼는 곤충과 동물들은 식물의 삶에 부담을 주는 존재로서 숲속 생태계의 난동꾼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곤충을 통해 식물의 꽃이 암수의 조화를 이루어 종자를 맺으며, 동물의 활동을 통해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의 후손이 널리 퍼지게 된다. 따라서 숲 속의 내막을 조금씩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면 그 생태계 속에서 여러가지 혜택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생물들의 모습에 감탄을 금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죽어가는 나무나 썩은 나무 그루터기, 혹은 흙을 뚫고 나오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버섯은 숲 속에서 어떤 존재일까?

버섯은 생물을 분류하는 방식에 따르면 동물, 식물과 전혀 다른 균류에 속한다. 즉 우리에게 썩 좋지 않은 인상을 주는 곰팡이의 일종이다. 곰팡이는 맨눈으로 보기 어려운 세균과 더불어 미생물(微生物)이라고 불리는데, 버섯은 미생물이라는 이름과 걸맞지 않게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대형 곰팡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항상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사실 버섯은 긴 삶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미생물 본연의 모습을 갖고 살아가며, 가을철 등 버섯을 만드는 시기에만 잠깐 사람들의 눈에 보이기에 숲의 요정이라 부르기도 한다.

버섯이 평소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 것처럼, 숲 속에서 그들이 하는 역할은 언뜻 보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이 아니듯이 이들의 기능도 매우 중요하며 다양하다. 그 중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능은 죽은 나무, 낙엽, 혹은 동물의 시체 등 각종 유기물을 썩혀 자연으로 돌려주는 숲의 환경미화원 역할이다. 대부분의 버섯이 이 부류에 속하는데, 표고, 느타리, 영지 등 우리의 귀에 익숙한 버섯이 숲에서 담당하는 본연의 기능이다. 생태계의 전반적인 먹이사슬 구조에서 분해자 역할을 하는 것인데, 숲에 버섯과 같이 물질을 썩혀 순환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가 없다면 숲은 각종 동식물의 시체가 넘치는 쓰레기장이 되어 있을 것이다.

분해자 역할과 더불어 버섯이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살아있는 식물에게 물과 양분을 제공하고 병원균이나 각종 외부환경의 압력을 막아주는 일이다. 이들은 곰팡이와 뿌리가 함께 붙어 있다고 해서 균근(菌根)이라고 부르는데, 식물 뿌리보다 가는 곰팡이의 균사(菌絲, 팡이실)는 식물이 차마 갈 수 없는 바위틈까지 파고 들어가 양분을 가져와서 식물에게 전해주고, 다른 병원균이 식물뿌리로 침투하는 것을 막아준다. 식물은 이러한 수고에 보답하고자 광합성을 통해 만든 탄수화물을 곰팡이에게 나누어 주게 되는데, 이처럼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공생(共生) 관계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식용버섯인 송이가 이 부류에 속하며, 능이, 싸리버섯, 달걀버섯 등도 같은 역할을 하는 친구들이다.

하지만 버섯들이 이처럼 긍정적인 역할만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버섯은 식물이나 동물의 몸속에 들어가서 그 생물의 영양분을 빼앗아 먹으며 자란다. 각종 식물에게 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이나 동충하초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겨울에는 벌레 모습이지만 여름에는 풀 모양을 하기에 ‘동충하초’(冬蟲夏草)라고 불리는 것은 곤충을 죽이며 자라는 버섯이다. 또한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솔제니친의 ‘암병동’에 소개된 후 약용버섯으로 부각되고 있는 ‘차가버섯’도 사실은 자작나무류에 형성되는 병원균이다. 이처럼 남에게 피해를 입히며 자라는 곰팡이는 특이한 성분을 지니고 있어서 질병 치료제나 건강 보조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외에도 버섯은 여러가지 역할을 담당한다. 흙 속의 버섯 균사는 토양입자들을 모으거나 흩는 등 토양의 물리적 성질을 변화시키기도 하며, 토양 속의 여러가지 독성물질을 분해하여 다른 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여건으로 변화시켜 주기도 한다. 버섯은 인간을 비롯한 숲 속의 동물들에게 중요한 먹거리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특히 가뭄이 심할 때는 많은 곤충과 작은 동물들이 버섯을 통하여 수분을 섭취하는 경우가 많다.

버섯을 포함한 곰팡이는 살아있는 식물이나 동물 속으로 들어가서 양분을 가져오거나, 죽어있는 생물을 분해하여 그 속의 양분을 섭취한다. 이들은 적당한 온도와 습도 등 살기 좋은 여건에서는 굳이 버섯을 만들지 않는다. 자신의 모습과 똑같은 세포를 증식시키며 나가는 방식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지 않는 쉬운 번식 방법이지만, 버섯을 만들려면 새로운 모습과 기관을 만들어야 하므로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특별한 문제가 없는 여건에서는 곰팡이 본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실 모양의 균사를 많이 만들면서 영역을 넓혀 나간다. 하지만 곰팡이가 편안히 살기 어려운 조건이 되면 생존전략을 바꾼다.

내가 살기 어려운 여건이라면 나와 똑같은 능력을 지닌 후손도 살기 쉽지 않을 것이므로, 나와 다른 능력을 지닌 후손을 만들어 종족을 유지시켜 나가고자 노력한다. 이때 사용되는 전략이 버섯(子實體, 자실체)을 만드는 방법이며, 자실체 속의 포자가 곰팡이의 후손이다. 즉 정말 살기 어려울 때 자식을 위하여 더욱 정성을 쏟는 부모의 마음이 버섯의 생활 속에서도 나타난다.

대부분의 버섯은 나무나 땅 위에 발생하므로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지만, 어떤 버섯은 땅속에 버섯을 만들고 굳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러한 버섯은 후각기관이 발달된 설치류나 소동물의 먹이가 되는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식용버섯인 덩이버섯(truffle)은 대표적인 지중버섯이다. 과거에는 덩이버섯 수확을 위해서 돼지의 도움을 받아 땅속의 버섯을 찾았는데, 최근에는 훈련된 개를 이용하여 버섯을 찾는다. 돼지는 발견된 버섯을 그냥 먹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를 훈련하여 이용하는 방식이 널리 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유럽의 덩이버섯이 발생하는 환경과 유사한 곳이 석회암지대를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으므로 관심을 갖고 찾아볼 만하다.

사람들에게 버섯은 좋은 먹거리로 이해된다. 최근의 웰빙(well-being) 붐과 더불어 양보다는 질 좋은 음식을 원하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버섯은 미래 식량자원으로 각광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버섯은 먹거리로서만이 아니라 유기물질을 분해하여 무기물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거나 식물과 공생하며 양분을 제공하는 등 숲 생태계에서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므로 숲의 조화로운 모습을 위해서는 보배로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버섯은 숲 속의 음지에서 피는 꽃이라 할 수 있으며, 숲이 숲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요소이다. 한편 숲의 여건이 바뀌면 나무의 종류가 바뀌듯이, 쉽게 보이지 않는 버섯도 천이(遷

移)한다. 각 숲이 치유능력이나 기타 숲으로서의 기능이 달라지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나무나 동물들의 차이만이 아니라 묵묵히 제 기능을 하고 있는 버섯과 같은 미생물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앞으로 숲을 거닐 때 숲의 보배, 숲의 요정이라 할 수 있는 버섯에도 관심을 기울여 본다면 또 다른 숲의 맛을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다.

〈박현|국립산림과학원 화학미생물과 연구원〉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