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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화엄사

세간과 출세간의 불이(不二) 함께 누릴 수는 없는가?
[오마이뉴스 2004-09-08 17:14]
[오마이뉴스 김강임 기자]
▲ 효대의 동산에 백운이 가득
ⓒ2004 김강임
불러도 대답 없는 지리산

길을 떠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떠나는 목적지가 산이든 바다든 계곡이든 어디든지 말이다. 그리고 천년을 자랑하는 성지라면 더욱 좋겠다. 그곳에서 만나는 유구한 문화와 역사를 맡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더욱이 한 시대의 문화와 역사를 찾아 떠나는 문화재 탐방은 국보와 보물, 문화재는 물론 천연기념물이 있어 그 발걸음은 더욱 신이 난다.

장맛비가 구름을 몰고 다니는 7월의 지리산 자락은 소나기가 한바탕 후줄근 쏟아질 것 같았다. 지리산. 마음 속으로 불러 보는 지리산의 이름은 '산산이 부서진 이름,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 그런 산이 아니다. 그러기에 지리산의 모습은 이름을 한번 불러 보는 것만으로도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이 문에 들어서면 부처님 품에 안긴다던데

자동차가 구례군에 접어들면서 거리마다 지리산의 상호가 눈에 띄는 것을 보니 지리산의 명성이 얼마나 높은지를 알 것 같다. 그 높은 명성 속에 자리잡은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 늘 산사로 향하는 계곡에는 물이 흐른다. 이 물이 백두산 정기를 타고 흘러 내려오는 부처님의 감로수는 아닌지? 계곡으로 내려가 손이라도 한번 씻어 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줄을 지어 가는 사람들의 뒤를 따르니 길 끝에 머문 곳이 절이다.

▲ 소낙비를 피해…보제루는 사랑방.
ⓒ2004 김강임
"이 문을 들어서면 부처님 품에 안긴다던데…." 옷매무새를 고쳐 입을 새도 없이 일주문에 들어선 나는 갑자기 퍼부어대는 소나기 탓을 하고 있다. 성지에 와서까지 누구를 탓하려 하다니, 내 성미에 채찍을 가하듯 소나기는 주룩주룩 쏟아졌다. 두 손을 합장하는 것도 잊은 채 소나기를 피해 사천왕문까지 뛰어왔다. 그리고는 금강역사. 문수. 보현 상이 있는 사천왕문에 다다르자 나도 모르게 합장을 하게 된다.

소낙비를 피해 자리를 잡은 곳은 보제루이다. 보제루는 지방문화재 49호로, 부처님의 법문을 들려줘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는 법요의식의 장소다. 소낙비에 얼굴 하나 가릴 수 있는 방패가 없으니 보제루의 툇마루는 길손들의 사랑방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소낙비를 맞으며 화엄사의 일주문을 거쳐 금강문 그리고 사천왕문을 통해 속속 들어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으니, 빈도가 지리산에 처음 왔을 때, 대지문수사리보살이라는 이름을 칭하였던 지리산 화엄사의 의미를 알 것 같다.

▲ 효대시비 앞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2004 김강임

효대시비의 슬픈 바람

지리산의 종주 화엄사에 가면 꼭 둘러봐야 할 곳이 '효대시비'이다. 도선국사 의천의 시가 새겨져 있는 이 시비는 지나가는 행인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고려 11대 문종의 네 번째 왕자로 태어났던 대각국사 의천이 효대에 올라 4사자석탑과 그 앞에 있는 공양석등을 보고 지었다는 이 시는 슬픈 바람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

적멸당 앞에는 훌륭한 경치도 많고

길상봉 위에는 가는 티끌조차 끊겼네.

하루 종일 거닐면서 과거사를 생각하니

날 저문 효대에 슬픈 바람 이는구나.

신라말기 불교 양식의 기법

▲ 뒷걸음 쳐 종각에 다시 돌아와서.
ⓒ2004 김강임
물러가는 소나기를 따라 다시 뒷걸음질을 치며 다가간 곳이 범종각이다. 화엄사에는 3층 누각의 큰 종각이 있었는데 임진란 때 왜병이 종을 갖고 가다가 용두리 앞 섬진강에 빠트렸다고 전해진다.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에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서 온 연기스님에 의해서 창건된 천년의 고찰. 앞마당에 얼굴을 마주보고 서 있는 동과 서의 5층 석탑이 보물로 지정돼 있으며, 신라말기 불교양식의 고고함을 자랑한다.

▲ 단아하게 자리잡은 동,서 5층석탑.
ⓒ2004 김강임
동쪽 5층석탑은 보물 132호로 신라말기 헌강왕 원년에 도선국사가 조성한 것으로 신라, 백제의 양식이 혼합된 탑이다. 부처님의 모든 법이 진실 그대로 참된 진리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부처님 도량은 참된 장소, 세계, 법계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탑이다.

서쪽 5층 석탑은 신라말기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 국사께서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조성한 것으로, 부처님 사리를 두 탑에 봉안하여 요동함을 막음과 동시에 가람의 원만한 기운이 감돌도록 하였다. 기단 아래 조각 형태는 12지신으로 개개인의 사람들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은 수호신이고 위 부분의 조각형태는 팔금강과 사천왕으로 부처님의 법과 부처님의 제자를 지키고 보호하는 신이며 2층 기단은 상대의 차별을 없애고 절대 차별이 없는 이치인 불이(不二)법을 표현한 것이다.

"공양은 하셨는지요?"

이 탑의 꼭대기보다 훨씬 높은 곳에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은 인조8년 벽암스님과 문도에 의하여 중건되었으며 화엄사에서 가장 오래된 법당으로 보물 제 299호이다. 향냄새가 가득한 대웅전에는 소낙비에 젖어 있는 중생들과 저마다 깨달음을 얻기 부처님 앞에 엎드려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더위도 잊은 채 정신을 몰입하여 기도하는 중생들의 등에는 흥건히 땀이 고여 있다.

▲ 각황전 옆에 있는 선방.
ⓒ2004 김강임
대웅전에서 삼배를 마치고 몇 개의 계단은 딛고 다시 내려오니, 스님 한 분이 우리를 맞이한다. "제주도에서 오셨지요?"

같이 동행한 일행이 모두 불자인지라 스님은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신다. 스님의 뒤를 따라 찾아간 곳은 영산전. 원래 영산전은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제자들을 거느리고 법화경을 설법하는 모습, 영산회상을 재현한 예불용 전각이라 한다. 그러나 현재 화엄사 영산전은 선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정면에 있는 툇마루가 인상적이다. 그 툇마루에 서니 화엄사의 전경과 백운에 덮인 지리산 자락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멀리서 오셨는데 무얼 드릴까"라며 고심을 하시는 스님은 "공양은 하셨는지요?"라는 인사가 전부였다.

'진지 드셨습니까?'라는 인사는 스님도 다를 바가 없다. 아니 절에서의 공양이 얼마나 뜻이 있는지를 알기에 스님이 고심하며 전했던 인사말의 의미가 얼마나 깊은 말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 사자감로탑을 한바퀴 돌았다.
ⓒ2004 김강임
인간의 번뇌를 안고 있는 감로탑을 돌아

'절 집에서 하루 묶고 가라'는 스님의 말씀을 뒤로 하고 발길 머문 곳은 4사자 감로탑이다. 마치 각황전을 수호신처럼 지키고 서 있는 4사자 감로탑은 보물 제 300호로 신라 문무왕 17년에 조성한 것이다. 4사자의 얼굴 표정은 각기 달랐다. 4사자 감로탑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본다.

사자의 표정이 마치 인간의 표정과도 같은 기쁘고, 화내고, 슬프고, 즐거운 표정에 나 자신을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 사자의 표현이 사람들의 수많은 번뇌. 그리고 부처님의 말씀, 부처님의 법문.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내가 느낀 사자의 표정은 수많은 인간의 번뇌를 상징하고 있는 듯했다.

▲ 중생이 쌓아 놓은 돌무덤은 부처님의 사리인양….
ⓒ2004 김강임
부처님의 진시사리가 묻혀 있는 4사자 삼층석탑 가는 길은 층층이 계단으로 되어 있었다. 방금 내린 소나기의 물방울이 채 식지 않아서인지 바람이 불 때마다 계단 양 옆에 서 있는 늙은 나무에서는 빗방울이 후두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발길을 옮기니, 중생들이 쌓아올린 돌무덤이 마치 부처님의 사리인 양 수정처럼 맑다. 부처님의 사리. 하나의 돌이 주는 의미 앞에 합장을 한다.

우산을 받쳐 든 스님의 모습이 계단으로 가려진다. 스님이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다 본다. 아마 그것은 깨달음의 경지. 해탈의 경지를 느껴보고 싶은 때묻은 중생들의 염원인지도 모르겠다.

▲ 세간과 출세간의 불이 함께 누릴 순 없는가?
ⓒ2004 김강임

세간과 출세간의 불이(不二) 함께 누릴 순 없는가?

4사자 3층석탑은 불사리공양탑으로 국보 제35호이며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셔와 그 안에 사리를 봉안하였다. 나보다 먼저 온 신혼부부 한 쌍이 4사자 3층석탑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다. 그리고 공양석 앞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든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스님의 모습에서 출세간의 의미를 느껴본다.

화엄사의 창건주인 연기조사와 어머니의 전설을 담고 있는 이 탑이 주는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머리에 석등을 이고, 왼손에 찻잔을 들고 찻잔 위에 여의주를 받쳐든 모습. 어머니에게 진리를 부처님에게는 차를 공양하는 모습을 두고 사람들은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닌, 불이의 경지를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간과 출세간의 경지를 아직 느껴보지 못한 중생은 어머니에 대한 '효'마저도 잊고 사는 일이 많으니, 불법의 이치를 깨닫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수행을 해야 할 것인지.

4사자 3층석탑 앞 효대에서 보는 지리산은 백운으로 가득했다.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그래서 말이 없는 지리산. 그리고 그 여의주 화엄사 사찰 내는 가는 곳마다 국보와 보물 문화재가 행인의 발길을 붙잡았다.

▲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출세간의 길이 있는가?
ⓒ2004 김강임
그러나 어찌하랴. 절 집에서는 출세간을, 절 밖에서는 세간을 꿈꾸며 파문을 일으키는 이 변덕스런 내 마음을.

/김강임 기자


덧붙이는 글
지난 7월 17일에 다녀온 남도기행 여행기입니다.

- ⓒ 2004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