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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길/산행♧여행 정보

숲이 있는 절집-용주사의 솔숲

<숲이 있는 절집>은 우리 숲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는 소나무 박사 전영우 교수가 정화 공간으로서의 절집과 숲을 불교적 시각으로 조망하는 생태문화기행기다. 연재 제목 ‘숲이 있는 절집’은 이호신 화백의 글씨다.






용주사의 들머리 솔숲 길은 정겹다. 큰 산자락에 자리 잡은 여느 사찰의 들머리 솔숲 길과 달리 한달음에 다가갈 수 있는 숲길이다. 사천왕문을 지나 삼문(三門)까지의 숲길은 성속을 가르는 차폐의 공간이나 속세의 때를 스스로 벗게 만드는 정화의 공간과는 다르다. 오히려 오밀조밀한 친근함이 배여 있고 따뜻한 정감이 묻어 있는 장원 속을 걷는 기분이다. 그래서 더욱 편안하고 친숙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마치 자애로운 육친의 손길을 온몸으로 느낀다고나 할까.
용주사는 정조 임금이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인근 화산의 융릉으로 옮기면서 능원을 수호할 목적으로 세운 능침사찰(陵寢寺刹)이자 효행불찰(孝行佛刹)이다. 따라서 용주사에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애절한 효성의 흔적들이 곳곳에 녹아 있다.
산림학도의 입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용주사와 융건릉 주변 소나무들이 정조 임금의 노여움 덕분에 송충이의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오늘까지도 전해지는 이 이야기는 어느 해 여름 융릉 참배를 끝낸 정조가 능역 주변을 거닐고 있을 때, 솔잎을 갉아 먹는 송충이를 보고, 미물인 송충이까지도 아버지를 괴롭힌다고 생각하여 이빨로 깨물어 죽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정조의 돌발적인 행동은 수행했던 시종들로 하여금 송충이 구제 작업에 뛰어들게 해 이 일대의 송충이를 모두 없앴다는 것이다.
소나무를 지키고자 송충이를 직접 씹은 정조의 이야기는 융릉 식수관에게 왕실의 내탕금 1,000냥을 하사하여 수원의 지지대 고개 정상에서 노송 지대까지 소나무를 심게 한 이야기와 맥을 같이한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화산이 천하제일의 복지(福地)로 생기가 항상 충만케 해드리는 한편, 자신이 직접 계획하고 만든 직할 도시인 화성에도 생명의 기운이 충만하도록 심었던 나무가 바로 소나무인 셈이다.
정조 임금과 소나무에 얽힌 이런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예사롭게 봐 넘겼던 용주사 주변의 굽은 소나무들도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애절한 효행의 마음이 담긴 생명 유산임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용주사 건립의 단초는 정조 임금이 보경 스님으로부터 들은 『부모은중경』 설법이라고 한다.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크고 깊은 열 가지 은혜에 보답하도록 가르친 경전이다. 따라서 정조 임금이 하사한 「부모은중경판」을 용주사 효행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용주사의 홈페이지에는 정조가 읽은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부모의 은혜를 열 가지로 설명하지요, 그 첫째가 아기를 배어서 수호해 주신 은혜, 둘째는 해산에 임하여 고통을 이기시는 은혜, 셋째는 자식을 낳고서야 근심을 잊으시는 은혜를 말합니다. 또 쓴 것은 삼키고, 단것을 뱉어 먹이시는 은혜가 네 번째요, 진 자리 마른 자리 가려 누이시는 은혜는 다섯 번째지요. 젖을 먹여서 기르시는 것이 그 여섯 번째이고, 더러워진 몸을 깨끗이 씻어주시는 것은 일곱 번째 은혜입니다. 그리고 여덟 번째는 먼 길을 떠났을 때 걱정하시는 은혜를 말하고 자식을 위하여 나쁜 일까지 감히 짓는 것이 아홉 번째 은혜, 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주시는 은혜가 열 번째입니다.”


용주사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한 애틋한 정조의 효심이 녹아 있는 효행불찰이라는 이름이 거저 붙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곳은 또 있다. 독특한 형식의 삼문(三門)을 들어서면 눈앞에 나타나는 천보루의 주련에서도 부모의 은혜를 상기하는 글귀를 다시금 만나게 된다.
백 살 먹은 어머니가(母年一百歲), 팔십의 자식을 항상 걱정하시니(常愚八十兒), 그 은혜와 사랑은(欲知恩愛斷), 목숨이 다해야 비로소 떠나네(命盡始分離).






나무와 숲을 공부하는 학인의 또 다른 관심 대상은 정조 임금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회양목이다. 그러나 대웅전을 오르는 계단 왼편에 자리 잡고 있는 회양목은 안타깝게도 말라 죽은 모습이다. 200 수십 년 동안 수명을 지켜오다가 오늘에 이르러 생을 마감하는 현장을 지켜보는 일은 서글펐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는 정조의 손길을 오늘날까지도 간직하고 있던 생명체가 바로 이 회양목 아니던가.
정조의 숨결이 녹아 있는 회양목을 바라보면서 문득 신록이 눈부신 5월에 부모님의 은혜를 기리고, 부모님의 체취를 느끼고자 원하면, 생전에 부모님들이 자주 찾았던 절집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생뚱맞은 생각은 절집의 노거수들이 생전에 절을 찾았던 부모님의 숨결을 간직하면서 오늘도 살아 있는 생명 유산으로 우리들 곁에 있기 때문이다. 절집의 노거수는 부모님이 내뱉던 날숨 속에 들어 있던 이산화탄소로 제 몸통을 키웠고, 부모님의 날숨으로 몸체를 키워온 나무가 내뿜는 산소를 오늘의 우리들이 절집을 거니면서 들숨으로 마시면, 바로 내 몸의 일부에 부모님의 체취를 다시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절집 나무들 곁에서 한두 시간 동안 머무르는 일을 부모님의 체취를 다시 담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치는 이처럼 단순하다. 바로 나무와 내가 딴 몸이 아니라 한 몸이라는 자각 덕분이고, 이런 자각이 심화되면 이 세상의 삼라만상이 모두 그물망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내신 월주 스님께서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부처님의 뜻은 ‘유정무정 개유불성(有情無情 皆有佛性)’입니다. 사람이나 동물 등의 유정물은 물론, 바위나 흙 등의 무정물에도 모두 불성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유정과 무정을 한 생명으로 봅니다. ‘삼라만상 두두물물(森羅萬象 頭頭物物)’이 한 몸이란 거죠.”
바쁘신 주지 정호(正乎) 스님을 모시고 오늘의 관점에서 용주사와 융건릉의 관계를 여쭈었다. 융건릉이 문화재로 보호를 받고 있는 형편에, 용주사는 옛날처럼 능침사찰의 소임을 수행하기보다는 효 문화의 살아 있는 교육 도장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고자 한다는 말씀을 주셨다. 특히 200년 이상 지속되어온 용주사와 융건릉의 관계를 무시하고 용주사와 융건릉의 중간지대에 대단위 주거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토지공사의 계획 대신에 효행문화관을 설립할 수 있게 경기도와 협의 중이라는 이야기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생기(生氣)가 가득한 천하제일의 복지라는 화심혈(花心血)의 화산으로 모신 예지가 효행 문화의 산실로 되살아나는 데도 일조할 수 있길 간절히 빌었다.  글·사진_전영우




전영우(全瑛宇)_ychun@kookmin.ac.kr 1951년 경남 마산 출생. 고려대학교 임학과를 졸업하고, 아이오와주립대학교에서 산림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민대학교 산림자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소나무 박사라는 호칭처럼 사라져가는 우리 소나무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널리 공유하고자 문화 예술인들과 함께 2004년 2월부터 ‘솔바람 모임’을 결성하여 소나무 사랑 운동을 펼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숲과 한국문화』, 『나무와 숲이 있었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 『숲과 문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