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글방/숲속의 글마당

[비망록]화진에서의 마지막 밤...

지리산 마실 2004. 5. 6. 18:41

2001년 11월  하순, 낙동정맥을 답사하던 시절,

경북 청송의 주산재에서 시작되는 구간을 답사키위하여 청송군 부동면
봉산리의 야영장, 즉 그 당시 자주 이용하던 폐교 운동장으로 접근하던
때였습니다.

낙동정맥마루금을 북에서 남으로 향하며 구간을 답사중이었으니 그 다
음 구간은 포항시의 기북면이 청송군에 이어 낙동마루금을 품게되는데,

강원도 태백시의 피재(삼수령)에서부터 시작하여 경북 봉화군,울진군,
영양군,청송군에 이르기까지 부산에서 산행기점으로 차량접근을 하려
면 남과 북을 동해바다와 나란히하며 뻗어있는 7번국도를 이용하는 것
이 가장 접근하기가 수월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포항시 기북면의 산자락부터는 경주에서 바로 접근을
하게되니 이제 동해안쪽으로 들어 설 필요가 없어집니다. 

화진은 동해안 포항시 송라면에 있는 마을로 해수욕장이 있고 해수욕장
은 국민관광지로 지정이 되어있는데  여기서 저가 부르는 화진은 이  7번
국도변의 휴게소로 하늘과 바다와 별과 달을, 그리고 산자락의 실루엣을
느낄 수 있던 나만의 공간을 말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제법 오랜시절이 지난 어제 밤,
문득 마루금답사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열정적으로 움직이던 그 때의
모습이 떠 올라  오래 된 산행기를 들추어보았는데,  산행로 기점접근을
위해  7번국도로 북상하며 언제나 이용하던 화진휴게소에서의 마지막 밤
이 떠 올라 부끄럽지만 그 서툰 기록을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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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만남...

화진...

오늘밤 우리가 그대를 맞이함이 어떠한가요?

괜시리 그대의 옆구리 그 모래밭을 거닐기도 하고
그 모래밭 뒤, 먼 바다에 이르는 어둔 수평의 금까지
눈길을 그윽히 두고는,
때로는 설레임으로 때론 무력감으로
마음 한구석을 파고들며,
자신을 고양시키거나 우울하게 하던
추억 저 편의 풍경들을 들추어내려 합니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안되는 것 처럼요....

이제 한동안 당신을 잊고 살아야 한다니
내 속내를 그대에게 드러내지 않을 수 없군요.

더 이상 가벼울 수 없는 은빛 편린으로 빛나거나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먹청의 무거움이었거나
차가운 달빛, 혹은 쓸쓸한 별빛을 머금었거나
갇혀있는 호수처럼 처연하였거나
우윳빛 물알갱이들의 장막을 드리웠거나
살갗을 파고드는 금속성의 차가움이었거나
참을 수 없는 분노로 自害하듯 제 몸을 부수었거나
집어등, 그 먼바다에서의 치열함이었거나

그대의 품에서 바라보는 동해바다의 모습은
늘 내게 위안이었고 평화로움이었다구요.

오늘 이리도 유난스럽게 당신을 대하는 건
아마도 내가 그대를 좋아했음을 알아달라는
서툰 감정의 표현이겠지요.

이제 언젠가 다시 이 길을 걷게되면
비록 눈꺼풀이 쳐지고 걸음은 늦어졌으되
생의 반환점을 돌며 그대를 만날 때 즈음
내가 더욱 강하고 성숙해졌듯이
그때에도,
밝은 눈으로 그대를 바라보고
서둘러 걸음걷지 않는 이 되어
당신과 함께하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화진이여....
그래서 다만 작별의 키스는 아직 미루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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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휴게소에서의 마지막밤을 보내며/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