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길/우리풀.꽃♧나무

사람들아 날 좀 보소!

지리산 마실 2008. 9. 4. 16:23

 

 

 

 

 

 

지난 주말, 서부 지리산의 어느 골짜기를 올랐다. 새로운 일과 건강이라는 이유가 없진 않았으나 거의 3개월 동안 산행을 하지 못하고 지나치다가 실로 오랜만에 산자락에 든 것이다. 산 오름이야 내게 익숙한 일이고, 그 마음도 여전하였지만 왕복 10Km도 채 안 되는 산길에 나는 완전 녹초가 되어버렸다.

이번 산행은 새삼스럽게 나이 듦과 건강이라는 명제를 확인하게 하였고, 아쉽고도 서운한 마음을 산행 내내 갖게 하였다.

 

하지만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산길을 오르다가 이 녀석을 만난 순간, 나는 나의 우울한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고, 산자락에 털썩 주저앉으며 반가움에 환한 미소를 띄울 수 있었다.

 

이름이 계속 맴돌며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희한하게도 뻐꾹하는 새소리와 함께 그 이름이 틔어 나왔다. 이 요상하고도 아름답게 생긴 녀석의 이름은 뻐꾹나리이다.   

 

꽃 이름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꽃잎의 자주색 반점이 뻐꾸기의 목에 있는 그것과 닮았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꽃말은 영원히 당신의 것이라고 하는 글을 보았지만 이 역시 신빙성 있는 자료인지는 모르겠다.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풀로 중부지방 이남의 백양산,두륜산,조계산, 그리고 지리산 등 남부지방의 산자락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봄에 잎이 날 때의 모습은 같은 백합과의 둥글레나 큰애기나리의 잎과 비슷하지만,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꽃 모양은 참으로 특이하다. 식물이라 하기보다는 무슨 곤충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꽃잎은 여섯 갈래로 갈라지고 자주색의 반점이 예쁘게 박혀있는데, 꽃 잎 사이에 또 여섯 개의 수술이 있고 그 가운데 불쑥 올라와 갈라진 암술이 꽃 모양을 이룬다. 

 

이렇듯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 자연의 능력이 새삼 놀랍다. 조금 전까지 산을 오르며 시선이 마주쳤지만 외면하듯 지나쳐버린 물봉선과 며느리밥풀꽃의 모습도 문득 새롭게 다가온다. 산 아래에서는 잡초로 취급 받는 달개비의 남색 꽃잎이 더욱 눈부신 모습이다. 귀한 꽃으로 인해 흔한 꽃도 귀하게 느껴지니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여름이 저만치 물러난 산자락, 가을꽃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이 시절, 여태껏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뻐꾹나리에게 고마움의 인사 건넨다.  

 

뻐꾹나리류()는 세계적으로 20여 종류가 있으며, 한 때 이 뻐꾹나리는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라고 여겨져 해외 반출도 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었으나, 최근 이웃나라에 같은 종류의 식물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어 특산식물의 지위는 잃었다고 한다.

두류/조용섭(08/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