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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평전에서 사랑을 듣다/술산 강영환

지리산 마실 2008. 3. 31. 09:19

강영환 시인의 '시가 있는 산' <7> 불일평전에서 사랑을 듣다
반도지 연못을 파고 피라미 풀어 남북의 통일을 기원
기지개 켜는 매화와 봄을 재촉하는 비
개구리 구애의 절규 밤새 요란한 전쟁 산방엔 생명이 '활짝'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불일평전의 봉명산방과 연못 반도지. 지난해 타계한 변규화 선생이 직접 한반도 모양으로 판 반도지에는 피라미들이 남북을 걸림없이 유유히 헤엄쳐 다닌다.
노란꽃 산수유가 환호하는 길을 따라 불일평전에 들었다. 봄비가 내리는 봉명산방에는 목련이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매화는 물방울을 머금고 활짝 핀 놈, 몽우리 진 놈들이 어울려 한 나뭇가지에 달려 있고, 마당 가운데 고욤나무는 내리는 비가 반갑고 고마운 듯 온몸을 활짝 펴서 잎을 틔울 문을 열고 있었다. 국사봉은 피어오르는 운무로 동양화 한 폭을 펼쳐 보인다. 마당 가운데 예사롭게 지나쳤던 연못은 반도지라고 한다. 반도지는 산방을 30여 년 지키다 작년에 별세한 변규화 선생이 직접 한반도 모양으로 연못을 파서 통일을 기원했다고 한다. 연못 위쪽에는 소망탑이 있어 반도지를 지켜본다. 지극하면 이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돌을 가져와 탑을 쌓을 때 통일은 마음에서 벌써 이루어 졌다. 불일평전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산바람도 묵으면 조용해지는 걸세

노각나무 잎 잎에 회오리치던 성깔도 죽어

햇빛 속에서 나뭇잎들 반짝이게 하고

분단 없는 반도지에 나울도 잠든 지 오래

숨을 곳 없는 바람은 소망탑에 들었네


반도지에는 물고기가 산다. 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물고기가 보고 싶어 변 선생이 키워온 피라미들이다. 얼음이 걷힌 못에는 봄 햇살을 받기 위해 나온 피라미가 지느러미를 흔들며 남북을 유유히 오간다. 통일은 살림의 미학에서 출발함을 보여준다. 개인적 욕심이나 이데올로기, 아집 같은 것으로 장벽을 쌓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인간들과는 달리 물고기들은 자유롭게 왕래하며 통일을 이루고 산다. 반도지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생명이고 생명이 곧 통일의 희망이다. 불일평전에서 꿈틀거리는 것은 그들뿐이 아니었다.

비 때문에 불일폭포 가는 일은 미루고 산방을 지키고 있는 아우와 함께 낙수 지는 소리를 벗 삼아 산을 주고받으며 마가목주를 기울였다. 밤이 깊어져 잠자리에 들었을 때 고요해야할 불일평전이 소란으로 들끓었다. 요란한 다툼의 소리 같기도 하고 누군가에 쫓기는 소리 같기도 하였다. 새들이 빗속에서 잠을 설치면서 다투는 소리는 아닐까. 왜가리 떼가 한꺼번에 끼룩대는 소리 같기도 했다. 궁금하여 옆에 누운 아우에게 물었다.

"새가 보채는 소리가 아니라 사랑을 찾는 절규랍니다."

아아, 그랬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먹개구리와 아무르 개구리, 산개구리들이었다. 들을수록 선명해지는 그 소리는 짝을 부르는 절규였다. 반도지와 야영장 아래 물웅덩이 속에서 그들이 벌이는 애정의 향연이었으며 애타게 짝을 찾는 세레나데였다. 짝짓기를 위해 수컷들이 벌이는 혈투 속에 쫓고 쫓기면서 내뱉는 사랑을 구하는 지극한 소리였다. 애절한 절규는 짧은 봄밤 불일평전을 가득 채우고 청학봉 백학봉 사이를 쏟아져 내리는 폭포 물소리까지 감추었다.

어스름이 찾아오기 훨씬 전부터 그들은 울부짖고 있었으리라. 그렇게 사랑을 나누었으리라. 아니 그들은 대낮부터 처절하게 짝을 부르는 소리로 자신을 드러내었지만 듣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이다.

아침이 되자 잠잠했다. 긴 사랑의 행각 뒤에 피곤하여 깊은 잠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반도지 물속을 살펴보니 수초가 우거진 얕은 물가에는 까만 눈동자들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많은 투명한 알들이 서로 엉켜 있었다. 사랑이 쏟아낸 결실이었다. 생존은 행복하고 생명은 아름다웠다. 알들이 깨어나 반도지의 남북을 오르내리면서 통일을 간직하기를 바라며 지극한 사랑을 가슴에 담았다. 나도 생명이었다.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