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산행채비/월간 '山'지에서
[잔설산행] 환절기 산행채비 /월간 '山'지에서
방수대책 철저히…아이젠, 장갑 등 겨울장비 챙겨야
-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1년에 네 번의 환절기를 겪는다. 계절이 바뀌는 때에는 모든 생물체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특히 겨울철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기 위한 준비는 생사가 달린 중요한 문제다. 특히 동물들에게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의 적응 여부는 절대적이다.
등산인들에게도 겨울은 도전의 시기다. 추위와 눈, 얼음 등 평소와는 판이한 환경에 적응해야 안전한 산행이 가능하다. 겨울산행을 하기 위해서는 의류와 장비, 식량까지 많은 새로운 준비가 필요하다. 보통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늦은 가을부터 겨울 준비에 들어간다.
-
- ▲ 소백산 능선길. 높은 산은 4월에도 잔설이 남아 있다.
-
겨울에서 봄으로 건너가는 환절기 역시 만만치 않은 준비가 필요하다. 겨울도 봄도 아닌 애매한 이 시기를 보통 해빙기라 부른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산천이 녹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산행은 혹한기 못지않게 위험요소가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해빙기는 날씨가 변덕스러운데다 등산로의 상황도 형편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산행시 반드시 그에 적합한 채비를 갖춰야 한다. 봄이 코앞이지만 높은 산이나 일몰 전후에는 겨울 장비와 의류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한낮에 근교산에 오르면 완연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시기다. 이런 극단적인 양극화에 적절히 대비해야 하는 것이 해빙기 산행요령의 핵심이다.
고산지대는 4월 말까지 잔설 남아
남북으로 600km 거리에 불과한 우리나라지만 해빙기는 지역에 따라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특히 산악지대는 같은 지역이라도 고도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대처가 어렵다. 그래도 일반적으로 근교 산에서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시기는 2월 하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부터 땅이 풀리기 시작해 4월 초순이면 완전히 겨울을 벗어난다. 하지만 해발 1,200m가 넘는 고산지대는 여전히 잔설이 남아 있다.
해빙기에는 산길의 컨디션이 엉망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았다 어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결국은 전부 녹게 되지만, 이 기간이 적지 않게 길어 산행 중 안전사고의 원인이 된다. 낮에 녹다가 밤에 다시 어는 것은 기본이고, 한낮이라도 양지바른 곳은 질척거리는데 음지쪽은 여전히 빙판인 경우가 다반사다. 해빙기는 연중 등산로 상황이 최악인 시기라 하겠다.
해빙기에는 적설층의 상태도 최악이다. 속칭 ‘썩은 눈’이라 부르는 단단한 적설층은 신설 상태보다 훨씬 걷기 어렵다. 반쯤 녹아 죽처럼 물렁거리는 것은 물론, 저항이 심해 러셀하며 헤쳐 나가는 것도 힘들다. 이런 눈 위에서 텐트를 치면 물구덩이에 빠지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에 빠져들기도 한다.
-
- ▲ 날이 풀리기 시작하며 땅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 산길은 엉망이 된다.
-
적설량이 많은 강원도 산간지역은 해빙기에도 구설층이 두텁게 쌓여 있다. 눈밭의 표면은 녹아도 그 아래 쌓인 구설층은 굳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지역은 구설층 위의 녹은 표면이 윤활유 역할을 해 상당히 미끄럽다. 조금만 경사가 져도 오르기 힘들게 된다.
산행계획은 겨울에 준해 수립
해빙기에는 운행이 늦어져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더욱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 빠지게 된다. 게다가 밤이 되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며 한겨울 같은 추위가 닥치게 된다. 어둠 속에서는 등산로의 파악이 쉽지 않아 운행이 더욱 느려지고 체력 소모가 많다. 이럴 때 여벌옷이나 보온의류를 준비하지 않았을 경우 조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서 산행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다. 지도를 읽는 것에 실패해 길을 잃었다거나 일행 중 부상자가 생겨 후송하느라고 늦어지기도 한다. 사람이 많이 몰려 등산로에서 병목현상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반드시 헤드램프를 준비하도록 한다.
겨울철 산행시 가지고 다니는 보온병도 개인당 하나 정도 준비한다. 차가운 식수는 체온저하의 위험이 있으므로 기온이 떨어졌을 때는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따뜻한 물은 언제 요긴하게 쓰일지 모르므로 두어 잔 정도는 산행이 끝날 때까지 남겨두도록 한다.
하산이 늦어질 경우 비상식이 아주 요긴하다. 칼로리가 높은 초콜릿이나 체내 흡수가 빠른 사탕류가 좋다. 허기를 달랠 수 있는 빵이나 육포, 어포, 과자 등도 무난하다. 다만 부피가 너무 크거나 무거운 것은 비상식으로 적당치 않다.
해빙기에 산에서 가장 자주 일어나는 사고는 낙석과 낙빙이다. 돌이 굴러 떨어지는 사고는 흙속에 들어 있던 습기가 얼었다 녹으며 주변의 돌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 원인이다. 겨우 균형을 유지하고 얹혀 있는 바위를 사람이 건드려 구르는 경우가 가장 위험하다.
땅 녹으며 낙석과 낙빙 잦아져
암벽이나 암릉 등반을 즐기는 전문산악인들이 특히 낙석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 등산인들도 해빙기에는 낙석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특히 능선쪽에서 굴린 바위가 계곡길로 떨어져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자신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아래쪽에 있는 이들을 위해 낙석을 일으키는 행동은 피해야 한다.
-
- ▲ 해빙기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아이젠 등 겨울장비는 산에서 요긴하게 쓰인다.
-
떨어지는 얼음 역시 돌조각에 못지않게 위험하다. 특히 협곡을 지날 때 주의가 필요하다. 밑에서는 보이지 않는 처마에 매달려 있던 얼음이 어느 순간 균형이 깨지면서 떨어져 흉기로 변한다. 해빙기에 좁은 계곡을 지나게 되면 항상 위쪽을 주시하고 모자를 착용해 머리와 얼굴에 치명상을 입지 않도록 대비하도록 한다.
-
환절기 산행용 장비
아직 동계용 장비는 유용하다… 겹쳐 입을 수 있는 다양한 의류 준비
눈이 완전히 녹아 쌓인 낙엽이 드러난 곳도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낙엽 아래 얼어붙은 땅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에는 낙엽 자체가 윤활유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산길이 매우 미끄럽다. 해빙기의 산길은 미끄러져 넘어지기 십상인 상태로 주의가 필요하다.
-
- ▲ 1 방수방풍의. 환절기 산악지대의 날씨는 매우 불안정해 반드시 방수방풍 재킷을 준비해야 한다. 2 중등산화와 스패츠. 고산지대에는 잔설이 남아 있어 중등산화가 필요하며, 두터운 잔설지대를 통과할 때는 스패츠도 착용해야 한다. 3 보온병. 바람에 장시간 노출되거나 날이 저물면서 기온이 뚝 떨어질 때 더운 물 한 잔은 체온 유지에 효과적인 것이다.
-
해빙기에는 아이젠이 여전히 필수 장비다. 1,000m가 넘는 고산에는 여전히 잔설이 남아 있고, 또 눈이 녹으며 등산로를 따라 흐르며 얼어붙기도 한다. 이런 지역을 통과할 때 아이젠은 매우 유용하다. 등산용 스틱도 미끄러운 산길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해빙기의 불안정한 등산로를 경험해 보지 않은 초보자나 운동신경이 둔화된 중장년층들에게 특히 효과적이다.
등산로 상태가 연중 최악이라 겨울용 장비 위주로 채비를 하는 것이 좋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눈밭을 헤쳐 나가려면 중등산화가 필수인데, 한겨울보다 물기에 젖어들 위험이 한결 높아 방수처리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산행에 나서기 전에 충분한 양의 왁스를 꼼꼼하게 발라 물의 침입을 막도록 한다.
스패츠 역시 아직 창고에 넣을 때가 아니다. 높은 산 북사면에는 4월 초까지 많은 눈이 남아 있다. 해빙기의 눈은 대개 축축해 옷에 닿으면 금방 젖어든다. 스패츠를 사용해 습설에서 바짓가랑이가 젓는 것을 예방해야 해야 한다.
방수방풍 재킷은 늘 휴대해야하는 품목이지만 환절기에는 특히 중요하다. 햇볕을 받아 사면은 포근하지만 능선에 오르면 칼바람을 맞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해빙기는 일기가 불안정하고 일교차가 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해빙기에 만날 수 있는 추위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봄철 날씨에 알맞은 준비도 필요하다. 봄기운이 완연한 맑은 날은 높은 산에 올라도 그리 춥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겨울옷을 고집하면 과도하게 땀을 흘리게 된다. 겨울과 마찬가지로 해빙기에도 땀의 조절이 쾌적한 산행의 필수 요소다. 우선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운행속도를 맞추는 것이 땀을 조절하는 요령이다. 하지만 이와 함께 옷 겹쳐 입기로 체온을 조절해야 한다.
-
- ▲ 4 헤드램프. 길을 잘못 들거나 조난을 당하는 경우 야간에 하산하려면 헤드램프의 휴대가 필수다. 5 등산용 스틱과 아이젠. 해빙기에는 등산로 상태가 가장 나빠 등산용 스틱이 매우 유용하다. 또한 바닥이 얼어붙은 지역을 지날 때는 아이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6 모자와 장갑. 눈이나 진눈깨비가 내릴 확률이 높은 시기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배낭에 챙겨둔다.
-
아침이나 새벽에는 쌀쌀해도 맑은 날 한낮에는 산행으로 인해 체온이 크게 상승한다. 따라서 얇은 긴팔티 한 장을 내의 위에 입고 그 위에 조금 두터운 난방셔츠나 집티셔츠 등으로 보온을 한다. 땀에 젖었을 때를 대비해 여벌의 옷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모자와 장갑은 사용은 하지 않더라도 배낭 속에 휴대해야 한다. 환절기에는 높은 산에서는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 모른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며 설화가 생성되기도 한다. 이런 급변하는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언제나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 글 김기환 기자
-
/월간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