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글방/숲속의 글마당

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한다

지리산 마실 2008. 2. 12. 16:50

[읽고 싶은 이 책]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한다

김제의 상록수 오윤택씨의 삶과 희망 이야기

‘김제를 오가면서 행복했다. 오윤택을 만나면서 많이 배웠다. 사람을 점점 멀리하고 싶은 나에게 그는 돌아오라고, 돌아오라고 손짓했다. 인연에는 다 이유가 있고, 때가 돼야 맺어지는 것 같다. 회의와 냉소로 가득 찼던 나에게 그는 긍정과 희망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을 삶 속에 녹여내 나를 살찌우는 일은 전적으로 나의 몫일 것이다.’ (김경환씨 글 중에서)



김제시 성덕면 남포리에 가면 ‘희망 남포 작은도서관’(약칭 남포문고)이 있다. 자그마한 붉은 벽돌 건물. 푸르른 들녘을 뒤에 거느린 단층 건물은 아담하고 예쁘다. 마당 왼쪽에는 농구대가 있고, 그 맞은 편에는 군데군데 황토빛 흙이 묻은 트럭이 한 대 서있다.

“오윤택이에요.”

1만5000여권의 장서로 가득찬 곳. 남포리 토박이 오윤택씨(47)가 생활하는 이 곳은 그의 삶 전체가 담겨있는 곳이다.

시각장애인이지만, ‘남포리 홍반장’으로 불리는 그는 늘 마을 사람들 편에 서서 부당함에 맞서왔다. 경지 정리 감시단을 조직해 부실공사를 막아내고, 저울을 조작하는 중간 상인들의 횡포에 맞서고, 버스 노선을 바꾸고 과속 방지턱을 만들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도서관을 세우고 장학회를 설립했으며, 해마다 마을 축제도 열고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멀쩡한 사람이 해내기도 힘든, 열가지 스무가지 백가지 일을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희망제작소(상임이사 박원순)가 기획한 ‘희망을 여는 사람들’이 ‘김제 남포리의 상록수 오윤택’을 찾아갔다. 「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한다」(푸른나무). 잡지사 기자를 지낸 김경환씨가 쓴 이 책은 시각장애인이 스스로 세상의 빛이 되기까지 결코 만만치 않았던 오씨의 삶을 되짚는다.

“세상에 내 맘대로 한번 해 보고 싶은 게 있긴 있어요. 책이 그렇게 보고 싶어요. 문고에 책이 들어오면 그냥 손으로 넘겨봐요. 한 권이고 두 권이고 하염없이 넘겨 보는 거죠. 그렇게 손으로 만지다 보면 내 눈으로 죽죽 읽고 싶어져요.”

“시각장애가 하고자 하는 일에 장애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오씨. 그저 불편하고 더딜 뿐이었다. 오히려 “이 어지러운 세상 안 보고 살 수 있는 것도 특권”이라고 웃는 그이다.

방 한 칸, 땅 한 평, 주식 한 주 가진 것 없다. 아내도, 자식도, 부모도 없다. 성한 눈, 건강한 몸조차 없다. 하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그가 그보다는 훨씬 많이 가진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모두가 자신만의 부와 명예를 좇는 요즘, 더 멀리 더 넓게 자기 주변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희망제작소 ‘희망을 여는 사람들’은 계속된다. 대한민국의 ‘희망의 증거’를 찾아가는 즐거운 여정이기 때문이다.

[전북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