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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통신

용이 머리를 숙인 듯, 꼬리를 치켜든 듯

by 지리산 마실 2008. 10. 1.

민족의 애환 깃든 지리산의 진면목
경상대 최석기 교수팀 '지리산 유람록' 후속편 발간

 지난 2000년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을 출간해 지리산을 아끼고 오르는 사람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최석기 교수팀이 그 후속 편을 최근 출간했다.


 바로 지리산 유람록 ‘용이 머리를 숙인 듯 꼬리를 치켜든 듯’이다.
 이 책은 옛날 선인들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쓴 한문으로 된 유람록을 번역한 것으로, 조선 전기 이륙(1438-1488)으로부터 18세기 전반의 김도수(1699-1733)에 이르기까지 18명이 남긴 22편의 유람록을 싣고 있다.


 이 책의 소제목을 보면 이 책에 담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를 보는 듯,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보는 듯 절로 매료된다. 그 가운데 한두 가지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흰 구름이 떠오르는 경관은 한 폭의 그림 같은 절경이라.”
 “강산의 아름다운도 알아주는 이를 만나야 하니”
 “최고운이 죽지 않고 아직도 청학동에 살아 있다.”
 “푸른 시내를 바라보니 속세의 번뇌를 말끔히 씻어주네.”
 “아름다운 덕은 천지와 함께 전해지리.”


 이 책은 우리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에 깃든 역사와 문화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시도됐다. 기왕의 지리산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 등산로를 소개하거나 민속, 사찰, 유적지 등을 안내하는 수준에서 만들어진 답사나 여행의 길잡이 성격을 갖는 책들이다. 따라서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의 애환이 깃든 지리산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지 못하고 있다.


 지리산 유람록이 비록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쓴 것이지만, 그들의 정신사 내지 지성사를 들여다보면, 민족과 국토에 대한 인식, 역사에 대한 회고, 인격완성을 위한 마음가짐, 역사적 인물에 대한 품평, 민중들의 고달픈 삶의 현장, 오염되지 않은 자연 생태, 지리산에 깃든 큰 인물들의 발자취 등이 다각도로 조명되어 있다. 따라서 지리산 유람록은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당시의 역사와 문화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종합적 기록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문화사 내지 지성사의 한 국면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따라서 이를 현대어로 번역해 다시 보급하는 일은, 우리 문화를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데 자양분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산을 좋아하는 것이 단순히 건강이나 취미로서 끝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성찰하고 자연을 이해하는 문화적 행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산수문화, 명산문화를 적극 보급하고 싶어 이런 책을 만들게 되었다. 이 책에 수록된 남효온의 유람록에 “심하구나, 지리산이 성인의 도와 같음이여”라는 말을 보면, 선인들이 지리산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이런 점이 오늘날의 등산문화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정신적 지표가 될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들은 경상대 한문학과 최석기 교수를 비롯해 강정화, 전병철, 김지영 박사 등 총 8명이다. 이 책은 최석기 교수팀이 1년 동안 강독을 하면서 번역해 만든 것으로, 향후 매년 1책씩 출판하여 총 5책으로 묶어낼 계획이다.


 최석기 교수는 “지리산권 문화는 한반도 문화의 중심으로 설정할 수 있으며, 이런 문화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면 우리의 정신문화를 올바로 정립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현대인들이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나서 다시 지리산을 찾는 것은 무엇일까? 그 뿌리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적 뿌리가 이 지리산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출간 의미를 밝혔다.


경남일보/강동욱 기자